책을 되새김질하다

대한민국 史 - 4(386 세대에서 한미FTA 까지)

대빈창 2013. 4. 1. 06:13

 

 

책이름 : 대한민국 史 - 4(386 세대에서 한미FTA 까지)

지은이 : 한홍구

펴낸곳 : 한겨레출판

 

얼마 전 나는 김병관이라는 작자의 염치없는 뻔뻔함에 어이없는 쓴웃음이나마 실실 흘릴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방부장관 후보자인 그는 휴대전화 고리에 박정희와 육영수의 사진을 달고 다녔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월간 박정희」 봉투에서 한 수 배웠던 모양이다. 오래전 졸부회장에 딸랑딸랑! 아부하던 이사진을 비꼰 개그코너는 어려웠던 시절 서민들에게 주말 밥상머리에서 웃음꽃을 피게 했지만, 나는 이 늙다리들의 도가 지나친 유치찬란한 과잉충성에 토악질을 참아야만 했다. 도대체 나의 조국의 천박함은 끝을 모른다. 그는 40년 군 경력을 살려, 오로지 국민과 국방만을 생각하며 충정과 혼을 조국에 바치겠다고 기회를 달라며 끈질기게 버텼다. 그런데 그는 무기중개업체 고문, 부동산 투기, 군납업체 주식보유 등 무려 33개의 각종 의혹이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다. 그의 40년 군 생활은 탐욕으로 점철되었다. 도둑질 행각이 여실이 드러난 고양이 주제에 자기가 책임자로 적격이라고 우겨대고 버티는 꼴을 볼 수밖에 없는 우리 국민이 불쌍했다.

이 땅 사람들은 박정희에 대한 조작된 신화에 얽매였다. 박정희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청렴하게 살았다는 신화다. 한홍구의 ‘장물바구니’가 얼마 전에 소포로 왔다. 그 책의 부제는 ‘정수장학회의 진실’이다. 다 알다시피 정수장학회의 전신은 5·16장학회다. 박정희는 1962년 부산 재력가인 부일장학회 김지태의 토지 10만평과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을 강탈했다. 그리고 경향신문과 영남대학도 뺐었는데 청렴하다니. 그리고 박정희가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핵개발을 추진했다는 신화다.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향이다. 사실 주한미군은 1958년부터 1991년까지 이 땅에 600여발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고교시절 교감이 떠올랐다. 그는 국민윤리 과목을 맡았다. 어느 날 그가 어깨를 으쓱대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짜리몽땅한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포스였다. 얘기인즉슨 몇 년 전 팀스피릿 훈련 중에 미군의 핵폭탄 2 ~ 3발이 분실되었는데, 이 땅에서 사라진 핵무기가 어디로 갔겠느냐는 요지였다. 즉 우리 조국도 이제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는 논리였다. 30년이 지났지만 그의 수구꼴통적인 활동은 여전히 왕성하다. 격주로 발행되는 지역신문의 칼럼에서 여전히 ‘작은 조갑제’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된 이 땅은 21C에도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빨갱이로 내몰렸다. 반공과 안보를 파는 애국주의자들이 득시글대는 이 땅의 고비용과 저효율은 여전했다. 1973년 주월 한국군 사령부가 철수한 뒤 별자리가 줄자, 박정희는 전체 사단수를 20개에서 40개로 늘리고, 후방의 사단은 예비군이 동원돼야 완전한 편제를 이루는 깡통사단을 양산했다. 그 3,800여 전국의 동대장 봉급을 합한 것이 54만 명 사병의 일년 치 봉급 총액 2,900여 억원보다 조금 적다. 또한 정부는 3만여 주한미군의 주둔비로 7,000억원을 썼다. 이 땅의 사병들은 거지 봉급을 받으면서 1년에 150여명이 억압적인 병영생활에 신음하다 죽어나갔다. 그런데 살농(殺農) 정책으로 텅 빈 농촌의 예비군 중대는 여전히 살아있다. 다만 대원 한명 없이 중대장 혼자 철통안보를 구가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Double 더블  (0) 2013.04.18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0) 2013.04.05
노동의 종말  (0) 2013.03.18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0) 2013.03.14
변방의 사색  (0) 2013.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