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노동의 종말

대빈창 2013. 3. 18. 05:03

 

책이름 : 노동의 종말

지은이 : 제레미 리프킨

옮긴이 : 이영호

펴낸곳 : 민음사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공감의 시대, 유러피언 드림. 미래 담론을 제시하는 사회사상가이자 실천가인 제레미 리프킨의 저작들이다. 그는 이 땅에서 일명 ‘종말 시리즈’로 낙양의 지가를 올렸다. 가장 최근의 저서 ‘3차 산업혁명’에서 그는 인류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기후변화를 손꼽으면서 “이산화탄소 과다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속도를 생태계가 따라가지 못해 폭설, 폭우, 쓰나미가 심해질 것이다. 앞으로 100년 안에 동식물의 70%가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 그의 베스트셀러 책들은 지구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나무를 벤 결과물들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책을 읽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저자의 책들은 내용에 걸맞게 재생지로 만들어야 합당했다.

내가 읽은 책은 1996년에 출간된 초간본으로 표지 그림은 바코드다. 이 책은 10년 만에 개정판이 선보였는데 표지 그림은 ‘노동의 종말’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피켓팅처럼 보였다. 책을 손에 넣은 지 17년 만에 펼친 것이다. 강화도 유일의 책방인 ‘청운서림’에서 직접 책을 뽑아 들었을 것이다. 아니, 그때만 해도 작은 서점이 2 ~ 3군데 있었다. 무슨 일로 읍내에 나갔다가 서점에 발을 들여 놓았고, 표제에 눈길이 끌렸을 것이다. 이 책도 기구한 팔자로 주인을 잘못 만났다. 김포 통진에서 석모도로 그리고 다시 통진으로, 이제야 서해의 작은 섬인 주문도에 안식처를 구했고 주인 손에 펼쳐졌다.

책은 1부 기술의 두 측면. 2부 제3차 산업혁명. 3부 전 세계 노동력의 감소. 4부 진보의 대가. 5부 후기 시장 시대의 여명으로 구성되었다. “기계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이다. 노동 계급에게는 해고 통지서가 발부되고 있다.(26쪽)”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기술자문이자 장관인 아탈리(Jacques Attali)가 한 말이다. 그렇다. 이 땅의 민중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그것은 노동이 물질생활을 보장하고, 사회라는 조직에 연결시켜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신기술이 대량실업과 전 세계적인 불황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술혁명으로 인한 ‘노동의 종말’을 찬양하는 자들은 실업자들을 보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무직자가 된다고 현실을 기만한다. 또한 ‘노동의 종말’이라는 개념은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방기한다.

이 땅은 자본의 불법 천국이다. 직장폐쇄, 용역깡패, 거짓 집회신고, 검찰의 기소권 남발, 경찰의 공장 무단 점검, 수억원의 벌금 폭탄의 손해배상 소송 등.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나서 한진 중공업 사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회사는 85호 크레인을 고물로 팔아 치웠고, 희망버스가 넘었던 공장 담벼락을 두 배로 쳐 올렸다. 그리고 어용 복수노조를 만들어 조합원 과반수 이상을 빼갔다. 85호 크레인을 지키던 민주노조에게 158억원이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 땅은 ‘노동의 종말’ 은 커녕 '정규직의 종말'을 꿈꾸는 천민 자본이 활개치는 아수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