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철 잠에 빠져 있던 소들이 섬마다 한 군데로 모여 들었습니다. 우시장이 아닙니다. 일 년에 한번 쇠소들이 얼굴을 마주 대는 날입니다. 서도의 사람 사는 섬 주문도, 볼음도, 아차도의 봄을 맞이하는 연중행사입니다. 위 이미지는 주문도 마을회관 공터입니다. 경운기들이 나래비를 섰습니다. 섬의 철우(鐵牛)들은 뭍의 소보다 일이 더욱 고됩니다. 봄에 사래 긴 비탈밭을 갈다가 물때에 맞추어 갯벌에 나섭니다. 조개잡이 망태를 먼 갯벌에서 날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섬의 쇠소들은 뭍과 바다 수륙양용일 수밖에 없습니다. 밭에서 온갖 곡식을 거두 들이고 거친 숨을 고르며 쉬는 뭍의 쇠소들이 부럽습니다. 그물에서 건져 올린 비린내 나는 물고기들을 밤과 낮 하루 두 번 져 나릅니다. 섬 주민들은 말합니다. ‘무쇠도 짠기는 당해낼 수 없다’고. 쇠가 쉽게 녹이 습니다. ‘짠기에 쩐’ 것입니다. 그러기에 섬의 철우(鐵友)들은 연중행사인 오늘 서로 모여 탈 난 몸을 고칩니다.
두드리고, 때리고, 찢고, 붙이고, 끼고, 빼내고, 용접하고, 갈고, 기름 먹이고, 연결하고, 땜질하고, 달고······. 경운기만이 아닙니다. 모든 농기계들이 손을 보고 있습니다. 트랙터, 이앙기, 엔진톱, 전기톱, 관리기, 예초기, 쟁기, 써레, 분무기 등. 뭍의 정비기술연구회원 25여명이 올해도 어김없이 섬을 찾았습니다. 2박3일 그들의 손을 기다리는 쇠소가 무려 150여 마리 이상입니다. 섬에는 농기계수리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계가 고장 나면 섬사람들은 뭍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루를 고스란히 바치는 시간도 아깝지만 목돈이 드는 도선료가 큰 부담입니다. 그래서 섬 주민들은 정성으로 수의사(?)들을 맞이합니다. 겨우내 기름을 아꼈던 마을회관 온돌방이 뜨끈뜬끈 합니다. 수리기사들이 묵을 곳입니다. 세 끼 식사 때마다 주민들이 아껴 갈무리해 두었던 말린 생선들이 밥상에 오릅니다. 농어, 숭어, 망둥어 등. 아직 찬바람이 맵찬 이 계절에 뭍사람들의 입맛을 돋우는 찬거리입니다.
이장님이 야참으로 토종닭을 잡았습니다. 속된 말이지만 ‘기름밥 먹는 사람’들은 술이 쌥니다. 마을회관에 여기저기서 추렴된 소주가 박스로 들이밉니다. 새로 기름을 먹은 쇠소들이 요란한 트림소리를 내 지릅니다. 푸다닥 - - -. 연통이 토해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쇠소 주인들은 기분 좋은 웃음을 입가에 담습니다. 그럭저럭 소들이 논과 밭, 바다에서 일할 기운을 차린 것입니다. 소고삐를 죄는 섬 주민들의 손아귀에 저도 모르게 힘이 모아지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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