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대빈창 2013. 5. 16. 04:33

 

책이름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지은이 : 빌 브라이슨

옮긴이 : 이덕환

펴낸곳 : 까치

 

‘나이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도 없고, 거리를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별들에 둘러싸여서, 우리가 확인도 할 수 없는 물질로 가득 채워진 채로,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는 물리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우주(118쪽)’에 살면서 나는 500여 쪽에 달하는 초판본이 발간된 지 10년이나 지난 책을 3주에 걸쳐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내 책장은 그동안 10여권 안팎의 과학책만 자리 잡았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내용의 대중과학서에 그동안 나는 흥미를 잃었다. 이 책은 어떻게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을까. 나만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1년에 책 한권 잡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인 이 땅에서 놀랍게도 1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그것은 현존하는 가장 유머러스한 작가 빌 브라이슨의 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저자는 근엄한 공식과 이론을 창출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과학자를, 라이벌의 돈과 명예를 질투하고, 연구 결과를 서로 내세우고 우쭐대며, 보통사람보다 사이코 기질이 농후한 속물적인 인간들로 묘사했다.

화학을 현대수준으로 도약시킨 인물은 통찰력을 가진 프랑스의 라부아지에였다. 그는 우주에 있는 물질의 총량은 언제나 같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처음 밝혀냈다. 그 결과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혁명에서 패배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1971년 국민의회의 지도자는 급진적인 자코뱅당의 마라였다. 샤를로트 코르테라는 처녀에게 목욕탕에서 살해된 마라. 그 장면은 나에게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표적인 그림 ‘마라의 죽음’으로 익숙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장-폴 마라는 젊은 과학자로 연소 이론을 프랑스 왕립 과학원에 제출했으나 무시당했다. 그때 라부아지에는 과학원의 유력한 회원이었다.

이 책은 모두 6부로 구성되었는데 빅뱅, 태양계, 초신성, 지구의 크기·나이, 지질학, 화석학, 화학, 원자, 우주의 크기·나이, 판 구조론, 소행성, 화산, 옐로스톤, 생명체의 발생·멸종, 대기권, 바다, 박테리아, 바이러스, 삼엽충, 분류학, 세포, 진화론, 유전자, 빙하기, 인류의 진화·기원·이주, 생물의 멸종 등을 다루었다. 세계적인 여행 작가이지만 과학에는 문외한인 저자는 이 책의 집필을 위해 3년간 전 세계의 과학자를 인터뷰하고, 현장을 답사했다. 저자의 노고를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바로 참고문헌이다. 무려 11쪽이다. 번역자인 서강대 화학과 이덕환 교수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여행기 작가가 썼는데도 그 어떤 과학자가 쓴 것보다 핵심을 잘 파악했다’고 과학책으로서의 정확성과 전문성을 내세웠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우쭐한 기분이 되었다. 그것은 저자 빌 브라이슨과 번역한 이덕환 교수 그리고 대중과학서 전문출판사인 까치도 모르고 지나친 너무나 큰 ‘옥의 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1940년대 하버드 화석학자 할럼 모비우스는 아슐리안 도구로 지역을 구분하는 모비우스 선을 정의했다. ‘모비우스 선을 넘어선 동남아시아와 중국 전체에서는 더 오래되고 단순한 올두바이 도구들만 발견되었다.······ 귀중한 첨단 석공기술을 극동 지역의 경계까지 가지고 간 후에 포기했을까.(475쪽)’ 여기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구대륙에서만 발견된 첨단 구석기시대 유물이었다. 그런데 1978년 고고학을 전공하다 입대한 한 미국병사에 의해 한탄강유원지에서 그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당연히 세계 고고학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비우스의 학설을 뒤집은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의 귀중한 유물은 1981년 국제적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이 책은 2003년에 초판본이 나왔다. 내 손에 잡힌 책은 2011년에 발행한 초판 31쇄본이다. 재간행본은 이 사실을 특별히 부각시켜, 이 책과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사랑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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