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흙을 밟으며 살다
지은이 : 윤구병
펴낸이 : 휴머니스트
변산 공동체가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지 15년이 되었다. 코뮨의 대표 윤구병은 더욱 바빠졌다. 공동체가 터를 잡아나가자, 저자는 일주일의 3일을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벌려 논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리출판사의 경영 일선에 나섰고, 가난한 자들에게 여전히 높은 병원 문턱으로 인해 민족의학연구원을 열었다. 또한 못 가진 이들 사이의 나눔과 연대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친환경 유기농 밥집인 ‘문턱 없는 밥집’을 열었고, 재활용품점 ‘기분 좋은 가게’를 개장했다. 너를 이겨야 내가 사는 경쟁체제를 지양하고, 더불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는 농부철학자의 바쁜 발걸음에 외딴 섬의 얼치기 생태주의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도/농 사이의 관계는 착취/피착취의 관계다(28쪽).’ 저자는 도시와 농촌 관계를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요즘 시골에는 젊은이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모두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 땅의 도시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자가 한탄하듯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예순, 일흔 넘은 시골 늙은이 한 사람이 뼈골 빠지게 농사지어 도시로 몰려든 젊은이 스무 명을 먹여 살리고 있는 형국이다. 도시는 자급자족의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참된 의미에서 자율적인 삶이 될 수 없다. 도시인구는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도 주변 농촌공동체에 착취의 빨판을 뻗을 수밖에 없다. 현대도시 사회구조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사흘만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어도 도시를 탈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농촌을 약탈할 것이다. 이러기에 농부철학자는 말했다. 도시인들은 ‘모두 가슴에 총칼을 품고 있다.’고. 분명한 문제는 도시문명 자체가 지속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문명 자체가 석유·원자력 등 에너지 생산과정에서 대기, 수질, 토양을 오염시키고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하는 물질에너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생색내지 않고 내 밥상에 오르는 밥과 국거리와 반찬을 마련해주시는 분들,······, 좋은 푸성귀는 남에게 먹이고 제 몫으로는 시들고 볼품없는 푸성귀를 남기는 분, 맛있는 고기는 남의 상에 올리고 자기는 찌꺼기만 먹는 분,······, 이분들 덕에 내가 살면서도 이분들을 섬기지 못하면 나는 개자식이다.(69 ~ 70쪽)’ 농부철학자의 고마움을 아는 마음씨를 누구나 가졌다면 이 땅에는 벌써 이상향이 도래했을 것이다. 섬에 안개가 자주 몰려들고 땅이 풀리면서 봄이 찾아왔다. 조만간에 도시인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온갖 오염물질로 공기와 물과 땅이 더럽혀졌다. 자신과 가족들만은 특별히 무공해 찬을 먹이겠단다. 서해의 작은 외딴 섬은 봄나물을 캐는 아낙네들과 스트레스를 날릴 요량으로 낚시 배를 빌려 흥청거리는 중년배 도시인들로 한동안 달뜰 것이다. 그리고 섬사람들은 그들이 던져주는 몇 푼의 돈에 흥감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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