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소 - 땅과 사람을 이어주던 생명
지은이 : 최수연
펴낸곳 : 그물코
192mm x 250mm. 책 판형이다. 표준전과 크기다. 눈에 익은 보통 책보다 판형이 크다. 46배판이다. 출판사가 그물코다. 생태주의와 생명운동에 관련된 책을 전문으로 펴내는 곳으로 재생용지만 사용한다. 그렇다. 이 판형은 종이의 낭비를 가장 줄이는 사이즈다. 두 가지 종이 크기에서 46전지(788mm x 1090mm)를 16절이나 32절로 접을 수 있다. 겉표지 이미지도 눈길을 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 1세대 책 전문가 북디자이너 정병규의 작품이다. 그는 기획과 제작을 아우르는 한국 최초의 출판 디자이너로 이름이 높다. 가난한 생태주의 출판사에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미술기법의 하나로 콜라주라는 것이 있다. 신문지, 색종이, 헝겊, 실 등을 오리거나 찢어 잘라 캔버스 등에 붙여 표현하는 기법이다. 내 눈에는 검정종이테이프를 찢어 제목 글씨 ‘소’를 이어붙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우개로 문질러 종이테이프를 접착시킨 것 같았다. 긁힌 흰 흔적은 지우개가 지나간 자국일 것이다. 소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드러낸 것 같기도 하고, 화가 이중섭의 그림처럼 몰골이 앙상한 ‘소’가 떠올랐다.
이 책에는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지은이가 이 땅 곳곳에서 만난 일소의 모습을 찍은 사진 101점이 실렸다. 부엌과 연결된 외양간의 소는 코뚜레를 끼우고 고삐가 매였다. 굴레를 씌우고 멍에를 멘 일소는 한평생 논밭을 갈았다. 일을 하다 한눈을 파는 것을 막기 위해 입을 가린 부리망을 벗기면 소는 소죽과 소꼴을 우걱우걱 잘도 먹어댔다. 소는 우리 조상들에게 한평생 일꾼이자 벗이었다. 그래서 소를 ‘생구(生口)’라 불러 ‘사람과 똑같이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여겼다.(60쪽)’ 일소는 코뚜레를 꿰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일만 하였다. 그런데 오늘의 소들은 굴레를 벗었다. 드디어 일에서 벗어난 이 땅의 소들은 행복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굴레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소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한 식구로 대접받던 이 땅의 소들은 이제 외양간이 아닌 축사에서, 굴레 대신 귀표를 달고, 소꼴과 소죽이 아닌 공장에서 만든 사료를 먹고 일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20 ~ 30년 천수를 누리던 소들은 3년도 안되어 고기로 팔려나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2010년 전국으로 확산된 구제역이 강화도에도 들이 닥쳤다. ‘죽음의 밥상’ 리뷰의 눈물 흘리던 소의 애달픈 사연을 다시 떠올렸다. 이 땅의 한우는 일에서 벗어났지만 참으로 고약한 세상을 만났다. 인간은 잔인하다. 살처분은 덩치가 큰 소에게 독약을 주사해서 굴삭기로 구덩이에 파묻는 것을 이른다. 더군다나 소는 반추위로 가스가 찬 위장이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칼이나 낫으로 복부를 찌르고 묻는다. 눈물겨운 얘기 하나. 아무리 덩치가 큰 황소도 주사 한방이면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암소가 3대의 주사를 맞고도 눈물만 훌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새끼를 밴 어미소였다. 곧 생매장당할 송아지가 가여워 시골 할아버지가 애틋한 마음으로 송아지의 머리를 손갈퀴로 긁어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송아지는 긴 혀를 내밀어 자꾸 할아버지의 손을 핥았다. 지옥의 살풍경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소가 굴레를 벗어 던지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생지옥이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흙을 밟으며 살다 (0) | 2013.05.10 |
---|---|
인간의 시간 (0) | 2013.05.06 |
백성백작 (0) | 2013.04.29 |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0) | 2013.04.25 |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0) | 2013.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