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대빈창 2013. 4. 22. 05:40

 

책이름 :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지은이 : 윤구병

펴낸곳 : 휴머니스트

 

주꾸미 맑은 탕, 계란 찜, 고들빼기·씀바귀 겉절이, 무짠지, 무말랭이 무침, 파김치, 묵은지 찌개, 어묵. 밥상에 오른 찬들이다. 갯, 산, 들이 품은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첫물 주꾸미다. 선외기로 어업하는 이장한테 전화가 왔다. 겨우내 어머니가 부탁하여 첫물 주꾸미를 고맙게 넘긴다는 기별이다. 고작해야 스무여마리. 작년 이 섬에서 주꾸미 맛을 본 사람이 몇 집 안 된다. 바로 금 주꾸미다. 그만큼 섬 주변의 어족자원이 고갈되었다. 마리당 오천원 꼴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농부들의 애만 끓이는 것이 아니다. 어부의 속도 마찬가지로 타들어갔다. 수온이 1℃ 변화가 생겨도 물고기들은 살 수 없다. 오랜만에 바람이 잔 바다에 나가 뿌려 놓은 소라방을 한나절 동안 건져 잡은 주꾸미가 저녁상에 올랐다. 어머니는 다섯 마리씩 투명비닐에 넣어 냉장고 얼음창고에 보관한다. 입맛을 잃었을 때 주꾸미 맑은탕이 밥상에 오를 것이다.

계란은 지천이다. 배삯도 뽑지 못하는 섬 사정상 5일장에 내다 팔수도 없다. 이웃 인심이 푸짐하다. 앞집·옆집 형님들이 산자락에 폐그물로 닭장을 얽었다. 닭은 줄기차게 알을 낳았다. 잘게 부순 굴껍질을 쪼은 닭의 계란 껍질은 두꺼웠다. 후라이를 하거나 삶거나 오늘처럼 계란찜으로 반찬을 한다. 고들빼기와 씀바귀가 묵정밭에 가득하다. 어머니가 하루 품을 팔았다. 개복숭아 효소로 간을 마친 고들빼기김치를 냉장고에 쟁였다. 한 달 찬으로 충분하다. 작년 김장 때 담근 짠지와 무말랭이, 묵은지는 년 중 밥상에 올랐다. 나는 사계절 가리지 않고 무짠지의 시원함에 숟가락을 부지런히 놀린다. 섬의 어묵은 슈퍼에서 파는 물고기의 부속과 뼈를 다져 밀가루와 범벅한 포장마차에서 국물에 담아 주는 어묵이 아니다. 바닷고기의 껍질을 다려 내린 어묵으로 투명하다. 젓가락으로 집을 수가 없다. 미끄럽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은 별미로 어묵을 쑤어 요즘 같은 봄철이면 달래장과 함께 마른 김에 싸 먹는다. 이 정도면 우리 집은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았다. ‘버리지 않는 삶은 버릴 것이 없는 삶, 검소하고 무엇이든지 아끼는 생활 태도의 반영이다.(99쪽)’

지금 내 책상 위에 오렌지 다섯 개가 접시에 담겼다. 미국산이다. 방부제와 항생제 덩어리인 이 과일은 미국에서 언제 수확했을까. 몇 달 배를 타고, 몇 달 창고에 보관되고, 수십 사람의 손을 거쳐 이 작은 외딴 섬까지 들어왔다. 형제들에게 어머니 위한다고 외국산 과일 부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도 그때 뿐이다. 그들에게 孝를 하지 말라는 소리와 같다. 명절이면 손마다 한꾸러미 선물세트가 들렸다. 냉장고에 햄 통조림이 가득하다. 섬에 올적마다 육고기가 들렸다. 당연히 공장식 축산이 키워 낸 병든 고기다. 툭하면 택배로 불량식품(?)을 어머니 드시라고 보낸다. 상품경제 시스템에 어쩔 수 없이 포로가 된 그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농부철학자는 머리글에서 세태를 이렇게 탓했다. ‘하는 짓이 지렁이 똥만도 못한 것들이 잔머리를 굴려 땅을 살립네, 공기를 청정하게 보호합네, 강바닥을 긁어내고 강둑을 높여서 물길을 바로잡네······ 허풍을 떠는 데 그치지 않고, 온 생명체를 한꺼번에 도륙하는 아수라장을 만들면서도 그것을 허물로 여기기는커녕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판’이라고. 마지막으로 밀양 단산초등학교 백아르미라는 학생이 쓴 시(188쪽, 전문)를 가슴에 손을 얹고 읊어보자.

 

강 건너 / 비닐하우스에 켜진 불 / 멀리서 보면 / 참 예쁘다. / 하지만 / 저 불은 / 들깻잎을 못 자게 깨우는 것. / 나는 이제 잘라 하는데 / 저거들은 얼마나 힘들겠노. / 인간도 저렇게 당해봐야 / 식물의 아픔을 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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