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철수의 웃는 마음
지은이 : 이철수
엮은이 : 박원식
펴낸곳 : 이다미디어
책장을 둘러본다. 「산벚나무·꽃피었는데···」 이철수 신작판화 100선전 도록이다. 1995년 학고재에서 출간되었다. 법정스님과 이현주 목사가 축하 글을 썼고, 시인 곽재구와 미술평론가 이태호가 해설을 붙였다. 목판화가는 정규 미술대학 출신이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워 미술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작가는 1980년대 민중판화가였다. 포스터, 전단, 깃발, 책표지 등 대중운동 현장에 그의 판화가 항상 함께 했다. 1983년 경북 의성 효선리의 깊은 산골마을을 거쳐, 1987년 천등산 박달재 아래 충북 제천 백운 평동마을에 삶터를 잡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의 분지였다. 그는 집에 작업장을 만들었고, 논과 밭을 장만하여 현재까지 농민의 삶을 살고 있다.
박달재 아래 산골마을에서 농사짓고, 나무를 새긴 지 25여년. 자연과 생명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 박원식이 2년여 동안 산골에 드나들었다. 이 책은 작가와 판화가의 대담집이다. 삶, 자연, 마음, 사람 4장에 모두 70여 편의 판화가 얽혔다. “판화 몇 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진 않지만 짧은 글을 쓰고 그림을 새겼습니다. ······ 제 판화와 오래 마주 앉기를, 그리고 예민하게 읽어 주시기를 바라고 준비했습니다.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판화를 만들었는지도 알리고 싶었습니다.(5쪽)”
목판화가가 가장 좋아하는 법문은 백장선사의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다. 판화가는 ‘우렁각시 도움으로 벼농사 지은 지 한 십 오년’된 유기농법 농사꾼이다.
집 한 칸·밭 한 뙈기 샀다. 등기 완료! 내 집이다! 내 땅이다! 허공에 말뚝 박아 줄을 치니 내 것이 되었구나! 희희낙락! 밭에 다녀 간 노루·고라니가 정말 네 밭이야 묻더니, 부엌에 들어 온 생쥐도 참말로 네 집인 줄 아느냐고 또 묻는다. ’참말로‘ 철수 2009
125쪽의 판화에 새겨진 글귀다. 곱게 일구어진 밭 이랑 위에 작은 집과 화사한 꽃나무 그리고 슬픈 눈망울의 고라니가 귀를 쫑긋 세우고 독자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사는 외딴 섬의 밭농사는 고라니와의 전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섬의 밭들은 하나같이 폐그물로 울타리를 둘렀다. 고라니의 침범을 막는 방책이다. 고라니는 심겨진 작물의 새순이 나오는 족족 귀신같이 뜯는다. 녀석들은 울타리의 허술한 구석을 잘도 찾아냈다. 이른 아침 밭을 들러보면 가끔 놈들이 밭 한구석의 그물에 걸렸다.
띠지의 목판화 그림이 새겨진 면 손수건이 책과 함께 왔다. 나는 강화도에 나갈 적마다 륙색에 손수건을 챙겼다. ‘마음으로 웃어야 웃는 거지요’ 스승의 날에 뭍에 나갔다. 한 달 만의 외출이었다. 이 책을 구입한 지 꼭 1년여 만에 배를 타고 나가면서 손에 잡았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 어머니가 가시면서 나를 보고 싶으셨구나. 친구는 국민학교도 중동무이했다. 농사일로 뼈가 굵었다. 아버지가 세 번 장가를 가셨다. 밑으로 누이동생 세 명은 모두 이복동생이었다. 한참 모내기로 정신없을 때였다. '어머니는 며칠 만 더 참으시지.' 친구가 담배 불똥을 튕겨냈다.
“영혼이라는 것도 살아 있을 때의 얘기라고 생각해요. 죽음 이후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산산이 흩어져갈 뿐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한 무(無)! 그런 거.” 판화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내 앉은뱅이책상 위 이철수 판화달력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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