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어린 왕자, 후쿠시마 이후
지은이 : 변홍철
펴낸곳 : 한티재
가끔 짬나면 들르는 생태모임의 한 웹진에 소개된 시집을 바로 구입했다. 한티재는 경북 의성에서 안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이다. 내게는 권정생 선생의 장편소설 ‘한티재 하늘’로 친근하다. 두 권의 소설은 책장에서 하염없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출판사 이름이 반가웠다. 도서출판 한티재는 2010년 4월에 대구에서 문을 연 지역 출판사다. 일인 출판사의 직원이면서 대표인 오은지 씨는 첫 직장에서 편집 일을 했다. 한동안 전업주부로 살다가 귀농하면서 “지역 출판사 하나 뿌리 내릴 수 있어야, 지역문화가 꽃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출판 일을 시작했다. 홍성의 그물코, 부산의 산지니, 대구의 한티재. 기억에 담아두어야 할 지역 출판사들이다.
시인 변홍철도 낯이 익기는 마찬가지다. 녹색평론이 대구에서 출간되던 시절, 10여년 동안 편집장과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현재는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시집에는 5부에 나뉘어 57편의 시와 이하석 시인의 발문 ‘고옵게 갈아놓은 비탈밭에 눈뜨는 별’이 실렸다. 시편들마다 가혹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시대의 아픔에 대한 시인의 연민이 서려있다. ‘끊어진 다리가 있는 마을의 평화’와 ‘바그다드의 신부처럼’은 미제국주의의 이라크 공습을, ‘이제 우리가’는 4대강의 죽임을, ‘작은 새여, 누이여’는 이주 노동자의 자살을, 와룡산 쓰레기 매립장에 대한 3편의 연작시, 그리고 3·11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을 고발한 표제시 ‘어린 왕자, 후쿠시마 이후(22 ~ 23쪽)’는 ‘핵발전소의 참변에서 희생된 어린 생명에 대한 연민이 뭉클하게 가슴을 치게 만드는 시’다. 하지만 내게는 멀지 않은 훗날 자칭 슬기동물이라는 인류에게 닥칠 참상으로 읽혔다.
야윌 대로 야윈 일곱 개 손가락/이 손으로 피아노도 칠 수 있어요,/아이는 쑥스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쪽은 단풍잎 같은 지느러미/나는 아이가 건너왔을 캄캄한 바다를 상상해 보았다
움직일 때마다 아이의 가슴에는/고향의 저녁놀이 가만히 출렁거렸다/처음에 나는 그것이 멍자국인 줄 알고 놀랐다
뒤척이는 아이를 다독거리다/아이의 상체가 유리상자로 되어 있다는 것을/그제서야 눈치챘다, 다시 보니 거기 담긴 것은/검붉은 낙엽 같기도 했다
얼마나 용을 썼으면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젖지도 않았을까/그래, 그래, 애썼다/이제 한숨 자 두렴
우리는 흙으로/아이의 투명한 몸을 조용히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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