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대빈창 2013. 9. 11. 08:02

 

 

책이름 :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지은이 : 박노자

펴낸곳 : 한겨레출판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출신, 한국에 귀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진보신당 비례대표. 박노자의 특이한 이력이다. 이 책은 국가폭력의 실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병영화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으며 자란 나는 당연히 책을 읽어 나가는 내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은 막스 베버(Max Weber, 1864 ~ 1920)가 ‘국가란 해당사회의 유일한 합법적 폭력기구’라고 정의하듯 국가의 계급적 본질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한겨울 촛불집회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고,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특공대를 투입하여 죽음으로 내몬 용산참사. 제주 강정 해군기지,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쌍용자동차 해고 투쟁, FTA 반대 투쟁에 나선 농민의 목숨을 빼앗은 강경진압 등. 다민족화된 북미에서 경찰은 ‘인종적 타자’를 겨냥하듯, 대한민국은 ‘반항하려는 가난뱅이’가 공격 대상이다.

2장은 전쟁기계 국가를 해부했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특수(산업 호경기)가 없으면 자본주의 경제는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되어 장기적으로 지탱되지 않는다.(114쪽).' 그렇다.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사업일 수밖에 없다. 3장은 불교와 기독교가 군사주의와 결탁하는 역사적 과정을, 4장은 ’근대가 만들어낸 유사종교‘로서 국가를 국민에게 길들이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문학, 영화, 예술, 놀이의 본질을 파헤쳤다. 남성의 현역 복무율이 평균 80%가 넘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된 병영국가다. 직장에서 순종기계로 강도높은 노동에 시달리다 간만의 휴식을 취하는 주말 저녁, 연예인들의 병영생활을 보여주는 ’진짜 사나이‘ 오락프로에 목을 빼며 노동력을 재충전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지막 5장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 ’여호와의 증인‘의 애달픈 역사를 통해 이 땅의 비뚤어진 병영국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전쟁에 대한 매우 과감한 저항으로 독립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바로 그 여호와의 증인이,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와 그 후예들의 통치하에서 남한이 병영국가가 되었던 시절에 - 비(非)국민 제1호 - 가 된 것이다.(284쪽)‘

아버지께 국가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1924년생 ‘묻지마라 갑자생’이다. 일제말기의 강제징용과 해방 후 5년만의 한국전쟁으로 전쟁터에 두 번이나 끌려가야만 했다. 그중 일부 40대는 돈을 벌러 베트남 전쟁터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의 군홧발에 허리띠를 바싹 묶고 잘 살아보자고 평생을 시달렸다. 자식 봉양을 받으며 편안한 노후생활을 받을 시기, IMF가 터져 다 큰 자식들의 자식들인 손주를 부양(?)해야만 했던 노인네들. 어린 나의 망막에 맺혀 지워지지 않는 그림이 있다. 가난한 우리 집은 언덕 위 초가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 지붕이 벗겨져 흉가처럼 볼썽사나웠다. 부모는 날품을 팔러 가시고 안 계셨다. 돈이 없어 슬레이트 지붕을 못 얹는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는 강제로 초가지붕을 뜯어버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서야 국가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생을 국가폭력에 시달린 글을 모르시던 아버지의 삶이 애달펐다. 모과나무 그늘아래 잠드신 아버지께 막절리 한잔 대접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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