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웃음의 힘
지은이 : 반칠환
펴낸곳 : 시와시학사
펴낸곳이 ‘시와시학사’다. 농민시인 고재종이 떠올랐다. 뒤늦게 농민시인의 세월 먹은 시집을 연이어 잡았다. 폐농하고 시전문지에서 편집일을 한다. 근년 들어 나의 손에 시집이 자주 들렸다. 하지만 작은 출판사의 시집은 없었다. 눈길을 끄는 표제와 생소하지만 특이한 시인의 이름과 농민시인이 떠올라 얇은 시집을 손에 넣었다. 나는 농민시인이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출신이라 작은 출판사도 지역출판사로 지레짐작했었다. 하지만 작은 시집은 특별시에서 펴낸 초판본이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8년여 만에 나의 손에 들어왔다. 시집은 한 부에 23편씩 3부에 나뉘어 모두 69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없다. ‘시인의 말’까지 정확히 70편이다.
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 지구는 통째로 제비꽃 화분이다(통째로, 전문 / 40쪽)
여름장마가 휩쓸고 갔어도 / 계곡에 버들치 한 마리 떠내려 보내지 못했구나(기적 1, 전문 / 51쪽)
시인은 오래전 ‘서울숲연구소’에서 숲 해설가 과정을 연수했다. 문학과 생태를 접목한 시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 두 편의 짧은 시에서 전초를 읽었다. 시집 속의 시들은 아주 짧다. 2행에서 아무리 길어야 10행에서 끝을 맺었다. 시인은 말한다. “속도의 시대에 짧고 간결한 것을 즐기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장르가 시입니다.” 빨리빨리 문화가 유다른 ‘속도의 시대’를 광속으로 질주하는 한국인들은 바빠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시인은 짧은 시편들 속에 일상의 사소한 아름다움을, 느림의 미학을 촌철살인으로 독자를 깨우쳤다.
어머니는 마흔넷에 나를 떼려고 / 간장을 먹고 장꽝에서 뛰어내렸다 한다 / 홀가분하여라 / 태어나자마자 餘生이다(일찍 늙고 보니, 전문 / 80쪽)
이 시편을 읽으면서 나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누이동생 얘기다. 아들만 삼형제를 둔 어머니가 생각지도 않은 애가 들어서자 떼려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분명 딸이니 낳으라고 하여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딸이었다. 50년 전 의학 기술로 딸·아들을 구별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 의사는 휴머니스트였던 모양이다. 세월은 흐르고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는 외딴 섬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시다. 불편한 교통이 이만저만이 아닌데도 누이는 보름이 멀다하고 섬에 들어와 어머니를 봉양한다. 누이가 말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니깐, 어머니에게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고. 누이는 천우신조로 뇌출혈에서 살아났었다. 어머니께 해외여행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힘든 병원생활을 이겨냈다. 누이를 배터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어머니가 혼잣말을 하셨다. “에휴, 뱃속에 들어선 저걸 지우려고 했으니, 하늘이 도우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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