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지은이 : 송찬호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이면우 -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안상학 - 아배 생각, 정낙추 - 그 남자의 손, 박남준 - 적막, 이정록 - 풋 사과의 주름살, 안학수 - 부슬비 내리던 장날. 하나같이 중앙이 아닌 변방에 살고 있는 시인들이다. 노동자 시인 유용주의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읽고 몇 권의 시집을 손에 넣었다. 마지막 남은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시인 송찬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은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시인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충북 보은을 지키며 시만 쓰며 살고 있다.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그동안 네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동시집을 냈다. 과작 중의 과작 시인이었다. 이 시집은 세 번 째 시집 ‘붉은 눈, 동백’이후 10년 만에 나왔다. 4부에 나뉘어 52 시편과 끝머리에 문학평론가 신범순의 해설 ‘고양이의 철학 동화’가 실렸다.
시집은 ‘자연의 동물과 식물과 곤충에 대한 헌사(119쪽)’다. 시제(詩題)를 훑어보자. 나비, 채송화, 반달곰, 칸나, 고양이, 염소, 민들레, 찔레꽃, 산벚나무, 고래, 코스모스, 토란, 복사꽃, 살구꽃, 깜부기, 종달새, 오동나무, 벚꽃, 사과, 맨드라미, 패랭이꽃, 개나리, 나팔꽃, 백일홍, 당나귀, 코끼리, 유채꽃, 기린, 산토끼. 시편들 속에 제재로 등장하는 동·식물은 100여개가 넘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 달이 솟아오른 창가 /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거만 / 손을 핥고 / 연신 등을 부벼대는 /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 맑게 씻은 /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 아무것도 없구나 /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표제시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29쪽)’의 전문이다. 고양이에 끌려 시집을 가트에 넣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섬 주문도는 고양이 천지다. 섬이라지만 바다밭은 말랐고, 주민들은 개간지 논을 경작하며 삶을 꾸렸다. 섬은 추수한 볏가마를 곳간에 쟁였다. 당연히 쥐가 들 끓었다. 집집마다 고양이를 많게는 십 여 마리씩 놓아 먹였다. 산과 들로 쏘다니던 고양이들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왔다. 윗집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새끼 고양이 삼형제는 먹이를 챙겨주는 형수를 종일 졸졸 따라 다녔다. 교회 예배가 끝날 때까지 회색과 노란색 줄무늬 새끼 고양이들은 가로등 불빛에 달겨 들다 떨어진 매미를 희롱하며 형수를 기다렸다. 꼬리를 바짝 치켜 든 새끼 고양이들의 그림자가 담벼락에 어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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