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절은 절하는 곳이다
지은이 : 정찬주
펴낸곳 : 이랑
암자로 가는 길, 암자에는 물 흐르고 꽃이 피네,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시작·회향편), 나를 찾는 암자기행. 그동안 저자가 펴낸 암자기행 산문집 모두가 내 책장에 자리 잡았다. 암자로 가는 길 초판본이 1997년에 나왔으니 저자가 암자 답사에 발품을 판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책 머리에서 저자는 ‘암자나 절 순례기는 마지막이라는 예감이 든다(7쪽)’고 말했다. 아쉽기 그지없다.
법계사, 위봉사, 불탑사, 백련사, 무위사, 보리사, 미황사, 대원사, 만연사, 송광사, 유가사, 귀신사, 보림사, 유마사, 옥천사, 미래사, 칠불사, 용문사, 화방사, 벽송사, 영원사, 문수사, 개천사, 불회사, 태안사, 쌍계사, 김룡사, 봉정사, 남장사, 선석사, 내소사, 개암사, 송림사, 용천사, 지보사, 다솔사, 대흥사, 도갑사, 운주사, 불갑사, 청량사, 쌍봉사, 망해사.
저자가 순례한 남도의 작은 절 43곳이다. 원당봉 불탑사만이 제주에 있고, 나머지 42곳의 절과 암자는 경상도와 전라도에 있다. 이중 나의 발길이 머문 곳은 고작 4군데다. 동리산 태안사, 능가산 내소사, 두륜산 대흥사, 영구산 운주사.
‘단아한 연하문이 여기부터 경내임을 알렸다. 명기된 편액은 분명 두륜산대둔사(頭崙山大屯寺)로 새단장되어 있었다. 일제 때 頭崙山이 頭輪山으로 大屯寺가 大興寺로 잘못 표기되었던 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동안 대흥사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을 위해 입장표에 대둔사(대흥사)로 표기했다.’ 1996년 여름 며칠간 남도를 답사하면서 나는 대둔사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 책은 ‘두륜사 대흥사’로 명기하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돈이라면 장땡인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세상을 만나, 대중에게 익숙한 ‘대흥사’로 다시 되돌아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 이 땅은 돈이라면 천박한 속물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실용적’이라 자화자찬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몇 군데 절이 눈에 밟혔다. 사자산 쌍봉사. 저자가 10여 년 전 전남 화순 산중에서 농사를 짓고 글 쓰는 이불재(耳不齋)와 이웃한 절이었다. 그 인연 때문이었을까. 작가의 대학시절, 주지 스님은 저자에게 유서를 보내고 강화도 절벽에서 서해로 몸을 던졌다. 선방산 지보사. 문수스님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소신공양했다. 저자는 크게 분노했다. “이 세상은 스님의 소신공양을 받을 만큼 진실한 정토인가(254쪽)” 그렇다. 이 땅은 부자를 만들어 주겠다는 MB의 감언이설에 표를 몰아주었다. 보에 겹겹이 갇힌 낙동강 물은 시궁창으로 변했고, 물고기들은 배를 드러낸 채 주검으로 떠올랐다. MB는 물러나면서까지 국민을 우롱했다. ‘4대강 사업은 대운하를 염두에 둔 사업이었다’고. 탐욕에 눈 먼 이들에게 사악함은 보이지 않았다. 제주 원당봉 불탑사. 제주의 탑 중 유일하게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탑과 4·3 항쟁으로 꺾인 제주 사람들의 꿈. 비슬산 유가사. 표지 그림은 천왕문 돌계단 위에 선 스님이 먼산바라기를 하며 합장을 했다. 지붕의 기왓골에 떨어진 솔잎이 쌓였고, 벚꽃인지 복사꽃인지가 분분하다. 젊은 스님의 파르라니 민머리와 둔탁한 털신이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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