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한창훈의 향연

대빈창 2013. 10. 4. 05:11

 

 

책이름 : 한창훈의 향연

지은이 : 한창훈

펴낸곳 : 중앙books

 

한창훈을 흔히 섬과 바다의 작가라고 한다. 작가의 고향은 거문도다. 1992년 ‘닻’으로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작가는 그동안 장편소설 3권, 소설집 5권, 기행문 2권을 상재했다. 하나같이 섬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의 소설이 나의 책장에는 없다. 그동안 나는 문학상작품집에 실린 작가의 소설을 단편적으로 읽었을 뿐이다. 섬에 터를 잡으면서 갯것과 바닷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작가의 소설보다는 산문집 두 권을 손에 넣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와 이 책이다. 표제는 ‘플라톤의 향연’을 떠올리게 만든다. 심포지움(Symposion)의 본래 의미는 ‘함께 모여 술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향연은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한가닥하는 지식인들이 술자리에 모여 에로스에 대하여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이 내용이다.

 

“그러니 이 책은 사람들과, 매 순간 명멸하던 감상의 향연입니다.

響宴이자 香煙입니다.

손을 잡고 등을 두드리며 술잔을 나눌 것입니다.“

 

작가의 말이다. 등단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산문집은 3부에 나뉘어 37개의 꼭지로 이루어졌다. 1부 ‘닻 놓았던 자리’는 거문도와 여수 등 태어나고 자라고 떠돌아다닌 바다와 섬에 대한 얘기이고, 2부 ‘애염명왕의 초대장’은 작가 주변 문인들에게 보내는 살가운 편지이면서 짧은 평전이고, 3부 ‘돌아보지 마라, 앞에 있다’는 소설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던 작가의 체험이 담겨있다. 나는 2부에 실린 작가가 고향 섬을 떠나 내륙에서 신산스런 삶을 이겨내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며 만난 문인들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故 명천 이문구 선생, 故 박영근시인, 소설가 송기원, 시인 황지우, 박남준, 이흔복, 김수열 등. 시인 유용주와 작가와의 친분은 단편소설 ‘고주망태와 푸대 자루’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주변 문인들과의 우정에 대한 짧은 헌사이기도 한 이런 유형의 글의 원조는 이문구 선생의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로 기억된다. 그후 나는 손수호 기자의 ‘책을 만나러 가는 길’과 이호철의 ‘문단골 사람들’과 윤중호의 ‘느리게 사는 사람들’ 그리고 유용주의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잡았다.

‘이름과 관련된 짧은 이야기’에는 3개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작가의 어릴 적 이름은 ‘영훈’이었고, 전기가오리가 거문도에서는 ‘팔저리’로 불린다. 그것은 고기를 만지면 전기가 올라 팔이 저렸기 때문이다. 작가의 외삼촌은 거문도와 여수를 오가는 여객선 ‘덕일호’의 선장이었다. 만삭의 임산부가 배 안에서 진통이 시작돼 외삼촌이 산파를 한 인연으로 여자 아이의 이름이 ‘덕일’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도 살아오면서 이름과 생일에 관련된 우스운 이야기가 몇 개 있다. 할머니의 이름은 흔해빠진 ‘언년’이었다. 내가 고 2때 돌아가셨는데 여든 여덟으로 장수하셨다. 면사무소에 사망신고를 하러갔다가 나는 놀라 자빠질 뻔 했다. 할머니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으셨다. 19C에 세상 빛을 본 분을 한 세기나 늦게 등재한 것이다. 재적등본대로라면 할머니는 태어나시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중학교 때 자기 생일도 모른다고 담임선생님께 따귀를 맞은 슬픈 기억을 가졌다. 생일이 3개였다. 호적상, 주민등록상, 집에서 아침으로 고봉 쌀밥에 미역국을 받는 진짜 생일까지. 요령을 부리지 못한 어리버리한 나의 대답이 문제였다. 우리 남자 형제들의 항렬은 진(鎭)인데, 나만 진(辰)을 쓴다. 호적과 주민등록의 한자가 같아야 하는데 나는 틀렸다. 급히 맞추려 면서기였던 동네 형의 권유대로 주민등록 한자를 고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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