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붓다를 죽인 부처

대빈창 2013. 10. 16. 07:35

 

 

책이름 : 붓다를 죽인 부처

지은이 : 박노자

펴낸곳 : 인물과사상사

 

절터에 박정희 사진 상설전시관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린 시절 사진을 포함해 35점이 전시되었다. 박정희는 1970년대 팔만대장경 판각지 발굴을 지시했고 1977년 사적 제259호로 지정했다. 군사정권의 호국 정신 앙양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현재 절터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고려 말 국찰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절터가 앉은 주변 논에 연꽃과 창포를 심고 매년 여름 연꽃축제를 열어 대중을 끌어 모았다. 읍내에 연꽃을 이용한 웰빙 음식점을 열었다. 물론 식사를 하면서 술을 곁들일 수 있다. 몇 년 전에 거금을 주고 목탁소를 절에 들였다. 대중들은 목탁소리를 내는 한우의 영험함에 찬탄을 아끼지 않고 시주함에 돈을 넣었다. 하지만 목탁소는 섬까지 들이닥친 구제역에 살처분 당했다. 주지가 극락왕생을 기원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십여년 전 어느 초가을 이른 아침 사람들이 들끓기 전, 나는 절터를 돌아보고 있었다. 새로 조성한 약수터는 흡사 공룡같이 거대한 거북이가 입으로 물을 내뿜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스님이 큰 기침을 했다. 사람 없는 절간에 보살이 스님의 굳은 어깨를 안마로 풀어주고 있었다. 나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스님의 법력을 떠올렸다. 경허는 해인사 조실로 있을 때 미친 여자를 절간에 들여 한 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는 일화가 전해오지 않는가.

바다건너 섬에 시나브로 어스름에 잠겨 들었다. 산중에 하나둘 네온사인이 켜졌다. 현란한 불빛은 섬을 찾은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도발적 유혹은 노골성을 드러냈다. 이 땅의 3대 관음도량으로 유명한 절 아래 마을 밤풍경이다. 절의 주지 자리를 놓고 조계종 파벌 간의 유혈 폭력이 곧잘 터졌다. 기도발이 센 사찰로 돈독이 오른 그들로서 놓칠 수 없는 보물단지였다. 일제강점기 주지의 아들은 섬의 가장 끗발 센 유지가 되었다. 절 아래의 거대한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위락단지로 개발된 사하촌은 돈을 삼태기로 긁어 담았다.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방자치 시대의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한국적 자본주의의 본보기인 셈이다. 십여년 전 나의 발걸음이 절에 닿았다. - 범종각의 동종은 근래에 만들었다. 신라종을 본 따 비천상, 유수, 유곽, 하대, 상대를 부조로 새겼다. 틈새마다 시주자의 이름이 빼곡하다. 비명횡사한 권력자와 주위인물들의 천박한 자기 드러내기를 보는 것도 애석한데 한 술 더 떠 나중에 한글로 이름을 새겨 넣어 쓴웃음을 머금게 했다. -

서울 삼각산 도선사에 故 박정희, 육영수 부부와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초상화가 걸렸다. 입시철이 되면 기도객들로 절은 붐벼 터질 지경이다. 돈 되는 기도도량을 접수하려 깡패까지 동원하는 불교계의 파벌 싸움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싼 감투싸움에 조직폭력배를 끌어 들였다. 거대 사찰은 손 큰 시주자들을 끌어들여 초대형 불사로 힘을 과시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궁긍적 해방철학으로서 불교를 말한다. 박노자는 불자다. 하지만 조계종은 물론 어떤 종단에도 적을 두지 않았다. 그것은 대부분의 불교종단이 국가와 자본에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불교는 자본주의의 병리 현상을 내면화한 개신교와 정체성이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와 유착하고 기복의 상징처럼 돼 버린 건 불교 정신의 변질일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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