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포도밭 편지

대빈창 2013. 10. 21. 07:24

 

 

책이름 : 포도밭 편지

지은이 : 류기봉

찍은이 : 김현호

펴낸곳 : 예담

 

초봄, 누구 / 포도나무의 눈물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똑! 똑! 5초마다 한 방울씩 흘리고 있는 / 나무들의 눈물. / 아침 열 시면 눈물 흘리는 속도가 빠르고요 / 밤에는 신기하게도 뚝, 하고 그친답니다. / 누구 포도나무의 / 눈물을 보신 적이 있나요. / 사람의 눈물과 같이 투명하지만 / 비리고 짜지는 않습니다. / 건강한 근육질의 나무는 / 눈물 흘리는 속도가 빠릅니다. / 나무의 눈물은 어디서 나오냐구요? / 초봄에 전정한 마디 끝에서 나옵니다. / 전정할 때의 아픔이 아물지 않은 상처, / 뿌리가 발을 뻗고 있는 땅속으로부터 / 희고 아프게 우려낸 나무의 눈물이라고요. / 그 마디 끝에 입을 대고 있으면 / 제 몸 안의 수분이 나무의 눈물로 바뀌어 달콤 시큼합니다. / 새봄, 제몸의 변화입니다.

 

'나무들의 눈물(120 ~ 121쪽)'이다. 농부시인은 '꽃'으로 유명한 이 땅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는 故 김춘수의 추천으로 등단한 애제자다. 그리고 스승의 권유로 98년부터 ‘시인 류기봉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열고 있다. 매년 포도가 출하되는 9월 첫 번째 주말에 열리는 예술제는 시인과 작가, 화가 등 예술인과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 수백명이 벌이는 축제다. 포도밭에는 문인들의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다. 故 김춘수, 故 박완서, 이수익, 조정권, 이문재 등. 남양주시 진전읍 장현리 산95번지가 시인의 포도밭 번지다. 시인은 20년 넘게 포도농사를 지어 온 농부시인이다.

전정가위, 가지치기, 순지르기, 봉지 씌우기, 끝물포도 등. 포도농사 용어들이 곧잘 등장한다. 시인이 키우는 포도는 캠벨이다. 향이 좋고 맛이 뛰어나며 무엇보다 추위에 강해 중부지방 포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품종이다.

“흙이 건강해야 포도나무가 건강하고, 결국 그 열매를 먹는 사람도 건강해진다‘고 말하는 시인은 생태·문화농업으로 포도를 키운다. 포도밭 중고 카세트에서 바흐와 모차르트의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법이다. ’포도시인‘의 첫 산문집을 나는 생태시인 이문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글을 읽어나가다 나는 여기에서 깊게 한숨을 내 쉬었다. 시적 감수성과 현실인식의 상관관계가 궁금했다. 

“내가 당신 대신 국회에 나갔다면 당신보다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200쪽)” 시인이 운전하는 차안에서의 노시인 부부의 웃으개 소리다. ‘대여(김춘수 선생의 호) 선생님을 여러 가지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203쪽)’ 그렇다. 나도 시인의 스승을 달리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故 김춘수 시인은 민정당 창당발기인으로 제5공화국의 개국공신이다. 그리고 1981년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다. 시인은 독재자 전두환에게 ‘님이시여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라는 찬양시를 받쳤다.

 

님이 헌헌장부로 자라 마침내 군인이 된 것은 그것은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 천구백칠십구년 가을에서 팔십년 사이 이 땅 이 겨레는 더할 나위 없는 /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우선 그것부터 끄고 봐야하듯이 우선 치안을 바로잡고 우선 인심을 안정시키고 우선 경제의 헝클어진 운행을 궤도위에 올려놓아야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해내기 위하여 천구백팔십일년 새 봄을 맞아 마침내 제 5공화국이 탄생하고 님은 그 방향을 트는 가장 핵심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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