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대빈창 2013. 10. 18. 07:12

 

 

책이름 :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지은이 : 박경남

펴낸곳 : 포럼 

 

예언자들의 말이 새겨진 벽이 갈라지고 있어요 / 죽음이라는 악기 위에 햇빛은 밝게 빛납니다 / 모든 사람이 악몽과 꿈으로 분열될 때 / 아무도 월계관을 씌지 못할 것입니다 침묵이 절규를 삼켜버리듯이 / 내 묘비엔 혼란이란 말이 새겨질 거예요 /······/ 운명의 철문들 사이에 식자와 명사들 하는 짓들 / 시간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어 길렀습니다 / 아무도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지식은 죽음을 불러오는 친구 / 내가 아는 인간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아귀에 있어요.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킹 크림슨’의 ‘에피탑’이다. 진보적인 밴드 ‘킹 크림슨(King Crimson)’은 ‘진정한 민중’이나 ‘민심’을 뜻한다. ‘에피탑’은  1969년 데뷔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에 수록된 곡이다. 인간의 어리석고 오만한 지식이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철학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분위기가 압도적인 8분이 넘는 대곡이다. 묘비명 모음집인 이 책을 잡으면서 나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노랫말이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존 키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볼테르, 윌리엄 셰익스피어, 카잔차키스, 제임스 딘, 미켈란젤로, 모차르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 조지 버나드 쇼, 아르튀르 랭보, 프란츠 카프카, 오스카 와일드, 호머 헐버트. 책의 앞머리에 실린 흑백사진 묘비들이다. 본문은 인생, 사랑, 행복, 자유, 정의, 예술, 명예, 성공, 수신, 희망. 10개의 장에 나뉘어 모두 153개의 묘비명이 실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묘비명과 비문, 제문으로 구분된다. 각 장의 말미에 15개 내외의 명언이 첨부된 것이 이 책의 구성이다.

 

보라! / 여기에 디오판토스 일생의 기록이 있다 / 그 생애의 1/6은 소년이었고, / 그 후 1/12이 지나서 / 수염이 나기 시작했고, / 또 다시 1/7이 지나서 결혼했다 / 그가 결혼한 지 5년 뒤에 / 아들이 태어났으나 / 그 아들은 아버지의 반밖에 살지 못했다 / 그는 아들이 죽은 지 4년 후에 죽었다(254쪽)

 

고대 그리스 알렉산드리아의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묘비명이다. 대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의 묘비명은 수학자의 명성에 걸맞다. 방정식으로 풀어야만 되는 그의 묘비명은 지금도 수학 예문으로 곧잘 등장한다. 표제로 쓰인 그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오역이다. 정확한 번역은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가 된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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