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대빈창 2013. 11. 25. 06:45

 

 

 

책이름 : 꿈꾸는 자 잡혀간다

지은이 : 송경동

펴낸곳 : 실천문학사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 ”

 

2011년 겨울 시인은 작가의 말을 대신한 글에서 끝을 이렇게 맺었다. 유치장에서 이 책의 서두를 썼다. 그리고 시인은 부산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지지하는 응원단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명이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폭로하는 시인을 지배계급은 두려웠을 것이다. 시인을 가두지 않으면 이 땅에서 연일 자행되는 중세의 마녀사냥, 잔혹한 노동탄압의 현장에 희망버스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1부 ‘꿈꾸는 청춘’은 깡패 큰아버지의 폭력, 아버지의 도박과 잦은 가출로 가난한 집안을 끌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슬픔. 상처투성이 집안으로 불량학생으로 기울면서도 유일한 구원이었던 문학. 허름한 잡부 숙소에 묵으며 노가다로 연명하는 일용노동자.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고생길이 훤한 비정규직 노가다를 사위로 받아 준 빨치산 출신 장인어른.

2부 ‘가난한 마음들’은 지하 창고의 막일꾼이었던 젊은 날의 풋사랑. LG 정유파업 때 서울에서 모인 4형제 가족들(큰형은 쟁의부장, 동생은 핵심대의원, 농민투쟁으로 상경한 매제). 어린 아들의 사우나 타령. 혜진·예슬이 유괴 살해 사건. 노동자 조영관 무명시인의 죽음.

3부 ‘이상한 나라’는 세계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 ‘모닝’을 생산하는 서산의 외주하청공장 동희 오토의 비정규직 노동자. 사진작가 이시우의 국가보안법 구속.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의 부당해고. 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 열사 장례식.

4부 ‘잃어버린 신발’은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노동자.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고공농성. 용산 참사. 글쓰는 건설일용노동자 닥트공 최경주.

5부 ‘CT 85호와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김진숙 지도위원 고공 농성과 희망버스. 이소선 어머니의 소천.

 

지금 이 땅의 비정규직노동자는 900만 명이다. 세월은 거꾸로 흘러가고 있다. “다시 참 쓸쓸한 겨울공화국이다. 언론의 입에 재갈이 물리고, 사람들의 양심은 얼어붙고, 광장은 봉쇄당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보수화되고, 가진 자들은 더욱 인면수심의 짐승이 되어가고 있다. 사회가 닫혀 지고 있다.(199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켜보며 희망보다는 절망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투쟁을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마음뿐이었지 희망버스에 발을 올려놓지 못했다. 매달 몇 푼의 후원금을 자동이체하면서 알량한 나의 양심을 도닥거렸는지 모르겠다.

 

나도 / 여느 시인들처럼 /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 한 잔의 진한 커피 / 한 잔의 맑은 녹차와 어우러지는 / 양장본 속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한미FTA는 내 시도 빼앗아갔다’의 1연이다. 삶 자체가 위협받는 세상에서 싸구려 서정시들이 넘쳐났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시인들과 독재자를 찬양하는 전도된 가치관의 소유자들이 시인이라고 거들먹대고 있다. 이 세상은 아수라장이다. 이웃들이 불에 타죽고, 백혈병으로 죽고, 농약 먹고 목매달아 세상을 버리는데 태평성대를 노래하다니. 그들은 시인이 아니다. 가치전복적 정신분열증적 세계인식의 소유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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