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농부시인의 행복론

대빈창 2013. 11. 29. 08:04

 

 

책이름 : 농부시인의 행복론

지은이 : 서정홍

펴낸곳 : 녹색평론사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덕유산 자락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집을 짓고, 함께 밥을 먹고 농사일을 하면서 배운 게 참 많습니다.(256쪽)’ 그 시절, 나는 시인을 한번 만날 수 있었지만 인연이 닿질 않았다. 책씻이를 하고나자 10여 년 전 일이 불현 듯 떠올랐다. 함양 덕유산자락 외딴집에 터를 잡은 후배를 만나러갔다. 화림동 계곡의 농월정,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등 정자를 둘러보다 후배는 계곡 가까운 마을로 접어들었다. 잎사귀를 무성하게 드리운 아름드리 감나무 아래 평상이 놓인 양지바른 집이었다. 늦가을 햇살이 푸짐하게 쏟아져 마당이 훤했다. 집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대도시 노동자의 삶을 떠나 귀농을 준비하던 농부시인의 덕유산시절 집이었다. 스쳐 지나갔던 그 일을 까맣게 잊고, 나는 농부시집을 찾다가 10년이 지나서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를 잡았다. 그리고 최근시집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농부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녹색평론에 연재되었던 시인의 생태귀농에 대한 글이 눈에 익어 차일피일 미루다 3년에 지나서야 책갈피를 들추었다. 2005년 시인은 함양 덕유산을 떠나, 합천 황매산 기슭 산골마을 나무실에 뿌리를 내렸다. 시인이 산 지 8년 된 산골은 열 한가구로 모두 22명이 살고 있으며 평균 나이는 71세다. 모두 노인들만 남은 농촌에서 시인은 막내로 청년회장이지만 회원은 한명도 없다며 쓸쓸한 웃음을 짓는다.

이 책은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시인의 삶의 기록으로 5부로 구성되었다. 1부 ‘농부와 밥상’은 생태가 파괴된 지구는 유기농부가 살리고, 우리밀 붕어빵 장사를 하면서 아들은 농부의 소중함을 깨우친다. 소농이 살아야 지구가 살고, 수입 사료를 먹은 가축의 분뇨는 유기비료가 될 수 없다. 똥·오줌은 흙으로 돌아가야 사람과 자연을 살릴 수 있고, 모든 생명의 어머니는 흙이다. 2부 ‘농부와 생명’은 흙, 논, 밥,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생명체가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별 지구의 흙은 1㎝가 쌓이는데 400년이 걸리며, 콩알 반쪽의 흙 알갱이 속에는 2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아있다. 2천 ~ 3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러야 바위에서 10㎝ 남짓 흙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은 모두 농업국가다. 이들 국가는 에너지, 식량, 일자리, 기초산업으로 농업을 대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무역대국 11위를 자랑으로 내세우며 농업에 잔인한 린치를 끝없이 가하고 있다. 그 결과 이 땅의 식량자급율은 23%다. 막말로 식량생산국이 지구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식량을 수출하지 않으면 앉아서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3부 ‘농부와 시인’은 시인의 실제 강연과 아이들과 주고받은 편지글이 실렸다. 4부 ‘농부와 희망’은 故 이오덕 선생님, 故 김남주 시인에 대한 회상. 전용철·홍덕표 농민열사 희생. 쿠바 유기농업 연수기다. 5부 ‘농부가 되는 길’은 ‘생태귀농을 꿈꾸는 벗들에게 들려주는 생명이야기’다. 시인은 귀농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농촌에서 꾸려가는 삶에 필요한 작지만 소중한 부탁을 자상하게 들려준다. 시인의 첫 산문집은 ‘흙을 버리지 못하고 가난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한평생 농촌 들녘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오신 농부들을 참스승(218쪽)’으로 모시는 관계론적 테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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