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 현재의 순간
지은이 : 게리 스나이더
옮긴이 : 서강목
펴낸곳 : 들녘
횡으로 비치는 태양 속에 / 표류하며 반짝인다 / 얼어붙은 풀밭 / 궤도바퀴에 깔려 / 연기 나는 둥근 돌 / 얼어붙은 풀밭 / 한 줄의 소나무들 너머 / 야생마들이 서 있다. / D8불도저 피스 전나무 먹어들고, / 새끼 소나무 생채기 낸다 / 얼룩다람쥐 달아나고 / 흑개미 한 마리 망가진 땅으로부터 / 갈팡질팡 알 옮긴다. / 말벌들은 무너진 죽은 나무 / 자신들의 집 위로 무리지어 선회한다. / 아직 서있는 껍질 벗겨진 나무로부터 / 방울방울 송진 스며나오고, / 으깨어진 덤불 야릇한 냄새 풍긴다. / 로지포울 소나무는 연약하다. / 캠프도둑들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본다.
‘모든 새벽은 청명하다(29 ~ 30쪽)’의 2연이다. 산림을 훼손하는 장면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국토에 대한 린치가 잔인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이 땅에서 매일 볼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편집증적 강박증 환자들처럼 중독성 강한 ‘개발’이라는 모르핀을 주사당해야 이 땅 사람들은 버틸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해의 작은 외딴섬도 예외일 수 없다. 사시사철 단 하루도 굴삭기와 덤프트럭의 굉음이 멈출 날이 없다. 땅을 파헤치는 모습이 눈에 뜨이지 않으면 자꾸 뒤처지는 초조함에 사람들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과장이 아니다. 눈을 들어 사방을 한번 둘러보라.
나는 지구에서 사라지는 생물 종과 생명의 존엄성을 최초로 노래한 생태시인 게리 스나이더를 일본의 작은 섬 야쿠에서 단순소박한 삶을 산 야마오 산세이의 에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태시인은 1930년에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벌목꾼, 산불 감시원, 선원 등 중노동판에서 몸을 굴렸고, 일본에서 승려로 10년간 치열한 선(禪) 수행을 했다. 이후 지난 30년간 캘리포니아의 시에라 네바다 산속에서 은둔과 명상의 생활을 지속했다. 시집 ‘거북섬’으로 1974년 퓰리처상을, ‘끝없는 산과 강’으로 1997년 볼링겐 상을 수상한 시인의 시는 ‘지구에 깃들여 사는 모든 생명에 대한 지독한 연민’을 근원으로 한다.
내가 요즘 즐겨 찾는 책의 출판사는 ‘들녘’이다. 생태공동체를 꿈꾸면서 농사 짖는데 필요한 ‘귀농총서’를 자주 손에 들었다. 최초 생태시인의 시선집은 편집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게리 스나이더는 모두 16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냈다. 이 책은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반세기에 걸친 그의 시작에서 69편을 가려 뽑은 시선집이다. 표지는 순한 미색이고, 시가 담긴 본문의 종이도 반투명 습자지처럼 보였다. 원문시가 뒤에 수록되어 시집치고 제법 책술이 두껍다. 글자체가 다른 시보다 두 배가 큰, 시집의 마지막 시 ‘이 현재의 순간(155쪽)‘이다.
이 현재의 순간,
오래 살아,
먼 옛날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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