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다산의 마음

대빈창 2013. 12. 23. 04:32

 

 

책이름 : 다산의 마음

지은이 : 정약용

엮은이 : 박혜숙

펴낸곳 : 돌베개

 

즐거움만 누리는 사람도 없고 / 복만 받는 사람도 없는 법인데 / 어떤 사람은 춥고 배고프며 / 어떤 사람은 호의호식하는가. / 너는 길쌈 일도 하지 않았는데 / 어째서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는가. / 너는 사냥도 하지 않았는데 / 어째서 고기를 배불리 먹는가. / 옆 집에서 먹을 음식을 / 어째서 한 사람이 먹어치우나. / 한 달 동안 먹을 양식을 / 어째서 하루에 소비하는가.

 

보통 한국인이라면 선조 중에서 ‘선생’이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리는 분으로 다산을 손꼽는데 주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나에게도 다산은 큰 선생이시다. 그것은 다산이 ‘평생에 걸쳐 민중의 편에 서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예리하게 비판했으며, 18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불굴의 의지로 방대한 저술(217쪽)’을 남긴데 힘입은 바 크다. 위 시는 이 책의 마지막 글로 ‘사치하지 마라(213 ~ 214쪽)’의 일부분이다. 다산이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내는 경계 편지다. 이 책은 우리고전 100선 시리즈로 돌베개에서 펴낸 11권으로 모두 6개의 장에 59개의 글이 실린 다산의 산문 선집이다.

1장 ‘나를 찾아서’는 다산의 내면적 성찰을 다룬 글. 2장 ‘파리를 조문(弔問)한다’는 민중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현실을 비판한 글. 그 중 1809년과 1810년 대기근과 전염병으로 백성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가는 현실이 가혹한 착취와 관리들의 부패에서 비롯된 것을 고발한 ‘파리를 조문한다’와 ‘백성들이 죽어 가고 있다’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3장 ‘가을의 공감’은 자연을 사랑하는 다산의 인간적 감성. 4장 ‘우리 농(農)이가 죽다니’는 한 가장으로서의 인간적 고뇌. 5장. ‘밥 파는 노파’는 주변 민중들에 대한 다산의 애정이 담긴 짦은 전기. 6장 ‘멀리 있는 아이에게’는 폐족(廢族)이 된 집안의 희망을 잃은 아이들에게 보내는 애비의 절절함이 담긴 편지글이 실렸다.

개혁군주 정조와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이끌던 다산은 정조가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하자, 40세 되던 해 신유박해를 당하며 집안이 풍비박산났다. 셋째형 정약종과 자형 이승훈은 참수되었고, 둘째형 정약전은 신지도를 거쳐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다산도 포항 장기에 유배되었다가 강진으로 옮겨졌다. 가까운 친구들도 벼슬에서 쫓겨나고 귀양을 갔다. 자신과 집안이 천 길 낭떠러지에 매달린 18년 동안의 유배 생활에서 다산은 ‘자신이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조선 사회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노력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표지 그림은 현대 한국화로 전갑배의 작이다. 누가 보아도 초당에 앉은 다산이다. 내게는 배경의 푸른색이 바다로 보였다. 다산은 지금 흑산도의 둘째형 정약전을 그리워하고 있다. 형제는 1801년 11월 5일 감옥에서 나와 유배지로 향했다. 22일 전남 나주 율정(栗亭)에서 강진과 흑산도로 헤어졌다. 그리고 만 15년 동안 형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사별했다. 올 여름 다산유적지에 짧은 발걸음을 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날이 더 차지기 전에 마석 모란공원의 전태일 묘와 조안 능내의 다산선생 묘를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되었다. 내년 봄. 선생이 18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했던 전남 강진에 내처 발걸음을 내디뎌야겠다. 만덕산의 다산초당과 흑산도의 형을 그리워하며 바다를 굽어보던 자리에 세워진 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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