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지은이 : 신영복
펴낸곳 : 돌베개
완산칠봉 바라볼 때마다 / 전주성 밀고 들어가던 / 농군(農軍)들의 함성들이 / 땅을 울리며 / 가슴 한복판으로 / 달려왔었는데 / 금년 세모의 완산칠봉에는 / ‘전주화약’(全州和約) 믿고 / 뿔뿔이 돌아가는 / 농꾼들의 여물지 못한 / 뒷모습 보입니다. / 곰나루, 우금치의 / 처절한 패배도 보입니다. / 그러나 우리는 다시 봅니다. /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 해는 내일 또다시 떠오른다는 / 믿음직한 진리를 / 우리는 다시 봅니다
선생이 1987년 새해를 앞두고 형수님께 보낸 편지글 ‘완산칠봉’(386쪽)입니다. 올해는 갑오(甲午)년. 이 땅의 가장 거대한 민중반란이었던 동학혁명,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83년 11월 사회참관으로 공주를 다녀오면서 선생은 갑오농민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우금치를 찾았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앙드레 말로의 반문을 되 뇌입니다. “누가 프랑스혁명을 실패로 끝났다고 하는가?” 선생은 1986년 2월 전주교도소로 이감되면서 농민군이 전주성을 공략할 때 넘었던 ‘완산칠봉’(完山七峰)이 거실 창 앞으로 한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을 가장 기뻐합니다. 그리고 갑오농민전쟁의 현장을 밟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동학기행』을 펼쳐 듭니다.
계사년 첫 책을 선생의 신간 ‘변방을 찾아서’를 잡았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갑오년의 첫 책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20여년 만에 다시 잡았습니다.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고전으로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선생이 20년 20일이라는 장구한 수형 생활에서 부모님, 형수님, 계수님께 보낸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제가 간직한 세월 먹은 책 중의 한권이 햇빛출판사가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이 책은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 둔 안산공단 노동자 시절부터 저의 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안산 지하방, 가리봉동 벌통방, 개봉동 지하방, 검단 골방, 김포 문간방, 석모도 바깥채를 거쳐 이제 바다와 갯벌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섬 주문도에 증보판과 어깨를 겨누고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삶이 다할때까지 이 두 권의 책은 항상 곁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반듯한 초상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초상'(11쪽)으로 저의 '자기성찰의 맑은 거울'(11쪽)이기 때문입니다.
초간본 표지 그림은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하는 여름 징역살이의 고충을 그린 1985년 8월 28일자 편지입니다. 증보판은 330쪽에 편지의 원문이 실렸고, 표지 그림은 박재동 화백의 선생의 펜화 초상입니다. 마지막 편지는 둥지에서 강제로 꺼내어져 쥐덫에 갇힌 새끼에게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연신 먹이를 물어다 날라주는 참새 어미를 보며, 편찮으신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아픈 절절한 심경이 담겼습니다. 저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동안 저는 ‘얼치기 생태주의자’를 자처하며 자동차와의 이혼을 궁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머니는 올해 여든둘이 되셨고 홀로 되신 지가 5년이 넘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꼽기가 열손가락이 모자르는 배다른 형제의 장녀이십니다. 섬에 들어오시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배다른 형제들과 자연이 멀어졌습니다. 어머니의 한배 형제는 1남2녀 입니다. 작년에 외삼촌이 돌아가셨습니다. 평생을 연탄공장 노동자이셨던 삼촌은 현장사고로 오른손 손가락이 엄지와 약지뿐이었습니다. 명절이면 잊지 않고 누님을 찾은 삼촌은 술을 많이 드셨습니다. 병신 손가락으로 힘들게 소주잔을 쥐신 삼촌을 바라보는 어린 저의 눈망울은 물기로 축축했습니다. 어머니와 여덞살 터울인 이모는 고관절로 걸음걸이가 불편하십니다. 모내기를 끝내고 저는 새 차를 뽑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고 남도로 꽃구경을 사나흘간 떠날 계획입니다. 벼베기를 마치면 두 분을 모시고 3 ~ 4일간 단풍구경도 다녀와야겠습니다. 새해들어 다짐한 계획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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