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대빈창 2014. 1. 13. 02:46

 

 

책이름 : 유홍준의 국보순례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눌와

 

그림 글씨 - 고려불화 ‘물방울관음’에서 수자기와 바리야크 깃발까지, 유물 목록 26개.

공예 도자 - 원삼국시대 쇠뿔손잡이항아리에서 백자진사연꽃무늬항아리까지, 유물 목록 27개.

조각 건축 - 일본 고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에서 남해 가천 다랑이논까지, 유물 목록 28개.

해외 한국 문화재 - 영국박물관의 백자달항아리에서 클리블랜드미술관의 무낙관그림까지, 유물 목록 19개.

 

이 책은 유물 사진 한쪽과 해설 한 쪽이 기본이지만 간혹 분량이 넘친 해설과 세부 도판이 수록되었다. 등장하는 유물 목록은 정확히 100개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록 7개가 첨가되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고려 비색」, 「수중문화재」, 「입하의 개화」, 「창덕궁 호랑이」, 「기메동양박물관의 홍종우」, 「미국과 일본에 있는 고려청자들」이다. 여기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는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로 우리 민족의 미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한국미술사에서 아름다움의 대표주자인 고려불화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고작 40년 밖에 안됐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현재까지 확인된 160점의 고려불화는 근래에 고증된 것이다. 그리고 연담 김명국의 그림 ‘죽음의 자화상’을 보며 지독한 허무주의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대나무 지팡이를 쥔 상복 차림의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을 일필휘지한 그림이었다. 주광酒狂이라고 불리던 김명국의 대표 그림은 달마도였는데, 이제 이 그림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만큼 충격은 강렬했다. 술기운으로 그림 위쪽에 마구 흘려 쓴 화제畵題는 이렇다.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데將無能作有

그림으로 그렸으면 그만이지 무슨 말을 덧붙이랴畵貌己傳言

세상엔 시인이 많고도 많다지만世上多騷客

그 누가 흩어진 나의 영혼을 불러주리오誰招己散魂

 

위 책 이미지의 유물은 백자진사연꽃무늬항아리와 보스턴 미술관의 고려 은제 금도금주전자다. 내 책은 초판 2쇄본인데 그새 도자기는 어디가고 주전자만 앞표지를 외롭게 장식했다. 책등에 호놀룰루아카데미미술관의 조선 목동자상이, 뒷표지의 고려 나전칠기염주합과 일본 고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이 반가웠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출간된 지 어언 20년이 되었다. 내 책장에는 ‘미학에세이’,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정직한 관객’, ‘회화의 역사’ 등 저자의 초창기 저작물을 비롯한 모든 책들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나는 저자의 ‘광펜’이다. 그런데 ‘책을 펴내며’에서 - 가끔 내게 왜 ‘국보순례’를 조선일보에 연재하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것은 조선일보가 내게 원고 청탁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정 칼럼을 제공한다는데 어느 신문인들 마다하겠는가. - 이 부분에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파워라이터의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는 말이다. 누가 몰라서 물었는가. 나는 알고 있다. 한 가난한 시인이 칼럼 연재를 몇 달 동안 고민하다 끝내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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