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
지은이 : 최성각
펴낸곳 : 도요새
하루를 묵는 길을 나섰다. 마석 모란공원의 민주열사묘역과 다산 정약용 유적지를 돌아보는 여정이었다. 읽을거리로 작고 얇은 포켓용 책을 빼 들었다. 5년여 만에 다시 손에 잡은 책이었다. 30년이 다 된 그 시절. 나는 낭만적 객기로 도계 막장을 기웃거렸다. 껄렁한 행색이 눈에 거슬렸는지 나는 탄광 문턱에 발을 디밀지도 못하고 젊은 혈기를 노가다 판에서 탕진하다 캠퍼스로 되돌아왔다. 세월은 흘렀고, 문득 작가의 첫 소설집 ‘잠자는 불’을 떠 올렸다. ‘최성각’을 입력했다. 하지만 작가의 두 권의 소설집은 절판되었고, 나는 엽편소설집인 이 소책자와 ‘택시 드라이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작가는 90년대 초 서울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반대 싸움을 거쳐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이끌었다. 내가 25년 만에 책으로나마 작가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춘천 퇴골에서 시골살이를 하며 작은 연구소를 꾸려 나가고 있었다. 나는 작은 금액이나마 후원금을 매달 보냈다. 작가는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과 함께 정성어린 자필 엽서를 보내왔다. 끝말은 이랬다. “ 좋은 인연 맺어 가기를 빕니다.” 달려라 냇물아 / 날아라 새들아 / 거위, 맞다와 무답이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쫓기는 새. 그동안 작가가 펴낸 책들이다. 뒤늦게 연구소 후원 계좌가 끊겨진 것을 알았지만, 작가와의 ‘좋은 인연’을 지속하기에 내가 너무 게을렀다. 시간은 흐르고 미안한 마음도 한 몫 더해 나는 이렇게 작정했다. 술을 끊고, 그 돈으로 후원 단체와 액수를 늘렸다. 정신대 할머니들, 양심적 병역 거부자, 굶는 북한 어린이들, 전태일 재단, 인권단체, 생태환경출판사 등. 나의 삶에서 작은 양심의 위안을 얻기 위해서 이 약속은 끝까지 지켜야겠다.
이 책은 인도의 사창굴로 팔려 나가는 어린 네팔 소녀들의 슬픈 얘기를 시작으로 소각장 건설 반대투쟁에 초청된 그린피스의 로버트 카멜까지 모두 30개의 짧은 소설이 실린 생태소설집이다. 힌두 축제를 맞아 제물로 쓸 소하나 제대로 잡지 못하는 순박한 히말라야 사람들, 총선시민연대의 출범, 무자비하게 베어나간 청와대 앞 아름드리 가죽나무 44그루, 신문보급소의 구독자 유치 과다경쟁, 동강댐 건설 반대투쟁, 보길도 예송리 바닷가 검은 조약돌, 환경호르몬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 산업쓰레기로 만든 공업용 소금의 식용 판매, 유전자조작 콩 등. 표지그림이 눈에 익다. 큰 딸의 죽음을 환경단체 ‘풀꽃세상’으로 승화시킨 화가 정상명의 그림이다. 앞날개 사진은 춘천 퇴골의 연구소로 보였다. 멍석위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길게 누운 작가의 환한 웃음이 싱그러웠다.
표제작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는 19C말 사하라 사막에서 수맥을 찾던 인부들의 얘기다. 장마철에만 물이 생기는 우물 ‘리르 와디’를 찾는 전문 패거리들은 맨손으로 우물을 찾았다. 수맥을 찾아 엄청난 압력을 버티는 석회암 판이 보일 때까지 80미터를 파내려갔다. 우물의 마무리 작업은 가장 나이 많은 사람에게 위임했다. 석회암 판을 부수는 마지막 곡괭이질. 엄청난 힘으로 물은 솟구쳤고 순식간에 우물을 가득 채웠다. 샘물을 하나 얻기 위해 한 사람을 제물로 받쳐야만 했다. 나는 사막 건조지대 투루판의 ‘카레즈’를 떠올렸다. 페르시아어로 ‘지하수’인 카레즈의 역사는 2천년이나 되었다. 설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증발하여 수량이 줄었다. 이에 인부 3 ~ 5명이 한 팀을 이루어 카레즈를 파는데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렸다. 가장 긴 수로가 30㎞에 달하고, 매년 20억㎡의 용수를 공급하는 총연장 3000㎞ 길이의 지하수로였다. 아직도 카레즈를 내려 온 물은 투루판의 식수원과 농업용수로 쓰였다. 문제는 만년설이 해마다 40㎝ 씩 낮아진다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