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장기비상시대
지은이 :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옮긴이 : 이한중
펴낸곳 : 갈라파고스
나는 이 책의 역자 후기를 두 번 읽었다. 첫 번째는 2011년 1월이었다. 녹색평론 116호에 번역가 이한중의 「세상은 다시 넓어진다」라는 글이 실렸다. 부제가 ‘《장기긴급상황》이 묘사하는 석유 없는 세상’이었다. 막 번역을 완료한 책의 내용을 소개한 글이었다. 그리고 책은 그 해 9월 생태환경출판사 갈라파고스에서 『장기비상시대』라는 표제로 출간되었다. 책을 손에 넣은 지 2년 만에 펼쳤다. 여기서 ‘장기비상시대’(long emergency)는 상시적인 긴급 상황으로 석유생산 정점 이후의 시기를 뜻한다. 저자는 지금 다가오는 아니, 닥쳐있는지도 모를 이 시기를 세계가 불타는 집을 막 나서서 벼랑 끝으로 가는 중이라고 비유했다. 벼랑너머는 지금껏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끔찍한 경제적·정치적 심연이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지질학자 케네스 드페이스는 “2005년 추수감사절 즈음에 석유 생산량이 정점을 찍었다.”고 추정했다.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거듭되는 오일 쇼크에 이어 말기적 쇠퇴가 시작되고 나서야 정점을 지났다는 사실을 백미러를 보듯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인류가 이룩한 경이로운 기술과 화려하기 그지없는 편의와 풍요는 순전히 값싼 화석연료 때문이었다. 1800년대 초의 세계 인구는 10억 정도였다. 작금의 72억이라는 인류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석유 덕분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선사시대 수억년에 걸쳐 모인 농축된 태양에너지를 흥청망청 써버렸다. 현대 문명은 인구, GDP, 매출, 수익, 주택 착공 건수 등 모든 것이 일정하게 팽창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한해 270억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고 있다. 지금의 비용율과 생산율로 남아있는 1조 배럴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뽑아낼 수 있다면(불가능하지만) 남은 석유의 총량은 37년이면 바닥난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05년에 출간되었다. 30년도 안 남았다.
그런데 어리석은 호모 사피엔스는 정신 못 차리고 아직도 미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대체에너지가 인류를 구해 줄 것이라는 과학기술만능주의가 낳은 근거 없는 낙관에서 비롯되었다. 수소에너지, 바이오매스, 메탄하이드레이트, 태양력, 풍력, 조력, 원자력 등. 하지만 저자의 분석은 냉정하다. 대체 에너지가 석유문명에 중독된 우리의 일상생활 시스템을 유지시켜 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에 열거된 대체에너지들은 화석연료 경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비상시대에는 산업 혁명의 원동력이었던 석탄이 이전의 지위를 되찾겠지만 그마저 고갈시기가 급속도로 빨라질 수밖에 없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인류는 석유 고갈과 맞물려 기후변화, 물 부족, 환경파괴, 유행병 대창궐 등 안팎곱사등이가 되었다. 북유럽이 위도에 비해 해양성 기후로 살기 좋은 것은 전적으로 멕시코 만류 덕분이다. 아마존 강의 7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유량이 컨베이어 벨트처럼 북유럽으로 흘러들고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버려 멕시코 만류의 흐름이 20%나 느려졌다고 한다. 1만년 전 한랭기의 원인은 멕시코 만류의 차단설이 유력하다.
“내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내 아들은 제트기를 타고, 아들의 아들은 낙타를 탈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속담으로 장기비상시대를 예고했다. 지은이는 말한다. 화석연료 시대는 ‘인디안 서머(겨울이 오기 전에 일시적으로 따뜻해지는 늦가을 시기)와도 같은 시기’였다고. 캐튼은 현대문명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비꼬았다. “화석연료 자원을 뽑아 쓰며 살아가는 인류가, 연못에서 한 철 동안 일시적으로 넘쳐나는 영양물질을 한껏 누리는 조류藻類와 다를 바 없다.” 급강하하는 생활수준, 편의와 안락의 상실, 줄어드는 수명, 자원 부족, 정치적 혼란, 군사 분쟁, 사회 무질서 등 장기비상시대는 석유시대가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엔트로피의 유산이다. 지난 200년동안 세계가 누린 엄청난 산업성장도 덧없는 운명으로 영영 끝날 것이다. 장기비상시대의 자원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략이 그것이다. 인류의 아마겟돈이 가공할 옆 얼굴을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표지그림처럼 한바탕 축포였던 인류의 화석연료 시대라는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다. 인류는 지금 브레이크 고장 난 지옥행 급행열차 속에 갇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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