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은빛 물고기
지은이 : 고형렬
펴낸곳 : 바다출판사
이 책을 만난 인연이 고맙다. 뒤늦게나마 이 놀라운 산문집을 손에 넣은 나의 독서여정이 자랑스러웠다. 은빛 물고기를 형상한 표지의 은박지는 연어다. 표지 빛깔이 연어의 살색이다. 속면지는 맑고 찬 백두대간 계곡 상류의 하상에 낳은 연어의 알 꾸러미 색깔로 보였다. 시인 고형렬이 눈에 띤 것은 단순히 한 시집의 표제 때문이었다. 『김포 운호가든집에서』 어디선가 보았음직한 흔해빠진 가든 상호다. 그런데 그 집이 자꾸 눈에 익었다. 김포공항에서 제방도로를 타고 강화도를 향하면 김포 하성에서 한강과 헤어진다. 전류리 포구를 지나 텅 빈 공유수면에 갈대와 억새가 지천인 너른 터에 가든 한 채가 외롭게 한강을 등졌다. 겨울 찬바람이 강 수면을 휩쓰는 휘파람 소리만 들리는 한적하고 고요한 외딴 가든의 주차장은 항상 비어 있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구체적인 형상이었다. 상상속의 집은 나에게 운호가든으로 정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질만한데 한강변 가든은 불현 듯 떠오르곤 했다. 시집을 펼쳐야 궁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의 시야에 이 책이 들어왔다. 출판사의 상호도 바다였다. 나는 잠시 안도현의 연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앨러번(alevin) - 올챙이처럼 불룩한 난황 주머니를 달고 있는 치어
프라이(fry) - 난황을 흡수하고 난상을 벗어난 어린 고기로 후기 치어
스몰트(smolt) - 산란회유를 하기 전까지의 식이회유를 하러 북태평양으로 이동하는 힘찬 젊은 연어
그릴스(grilse) - 알을 낳으러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
새먼(salman) - 백자와 알이 완전히 성숙된 연어
켈트(kelt) - 산란 후의 연어
성냥개비만한 치어가 고향인 남대천을 떠나 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어린 연어의 목적지는 북태평양 오호츠크해, 베링해다. 300마리 중 겨우 2마리가 3년 만에 다시 알을 낳으러 고향을 찾는다. 연어의 한살이는 3,200㎞의 회유노선이다. 이들의 생태를 장장 십여 년 간 추적한 한 시인의 결실이 낳은 생태에세이. 책은 1998년 시인이 청량리역에서 태백선으로 속초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되었다. 시인은 해남에서 태어났지만 속초 사진리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깊은 골짜기 마을 신기의 고인봉 노인을 회상한다. 나는 신기리에서 고작 너와집을 떠올렸다. 고 노인은 젊은 시절 첩첩산중 깊은 계곡까지 회유한 연어를 박달나무 삼지창으로 잡았다. 옛날 얘기였다. 지금은 산간도로로 덤프트럭이 수시로 오갔다.
연어는 사라졌다. 연어가 돌아오는 동해로 흘러드는 강의 회유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다. ‘문명과 생명의 관계에서 문명과학은 인간 외의 생명들에게는 거의 마魔가 아닐까 싶다.’(248쪽) 그렇다. 인간이라는 종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종의 서식지를 파괴했다. 시인의 어린 시절 삼척 오분리의 남대천 하구에 10미터 깊이의 천연 늪이 있었다. 훤칠한 나무숲과 무성한 물풀들이 잘 우거진 담수어들의 삶터는 베링해에서 삼척 고향으로 돌아 온 연어들이 가쁜 숨을 쉬고 계곡 상류 산란장으로 향하던 휴게소였다. 그 최적의 자연 늪을 인간들은 불도저로 밀고 테니스장을 만들었다. 고된 여정에서 숨을 몰아쉴 수 있는 쉼터를 빼앗긴 연어들의 숨은 가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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