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지은이 : 함민복
펴낸곳 : 시인생각
○ ○ ○ 님께
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뜨겁고 깊은 날 되시길
2013. 초겨울 함민복
지난 초겨울 오랜만에 시인의 처마 낮은 황토집에 들렀다. 시인과 나는 점심 밥집을 찾아 길을 나섰다. 시인이 앞장섰다. 밥집 ‘토가(土家)’는 시인이 예전에 살던 동막리 옆 동네 여차리에 있었다. 시골집을 바깥은 그대로 둔 채 실내에 주방과 홀을 들였다. 우리의 점심 메뉴은 ‘젓국순두부’였다. 강화도 음식은 젓국을 많이 넣은 것이 특색이다. 청양고추를 넣어 칼칼한 말국이 일품이었다. 시인은 입맛마저 어느덧 강화도 사람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시인이 책을 건냈다. 시인의 45℃ 옆모습을 그린 캐리커처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표제부터 훑었다. 시인의 깊은 속내가 느껴졌다. 분명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였다.
시선집에 시인은 속이 많이 상했었다. 이미지의 표제는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듭니다’다. 초판본 표제부터 오타더니 시편을 읽어 나가는데 곧잘 오타가 눈에 잡혔다. 표제는 시선집의 첫시 ‘가을’(13쪽)의 전문으로 한 줄 시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에서 한국대표명시선 100 시리즈를 펴냈는데, 이 시선집은 99권 째였다. 시집 「우울氏의 一日」,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과 카툰집 「꽃봇대」에서 가려 뽑은 49 편이 실렸다. 시선집은 ‘시인의 말’만 구색을 맞추었을 뿐 해설, 표사 등 일체 없다.
시간은 흘러 열흘 전 봄기운이 완연한 나날이었다. 친구의 시선집을 너무 묵혔구나. 잠자리에 들면서 북다트 서너개를 속면지에 끼웠다. 새벽기도 종소리에 깨어 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새벽 6시. 뜬금없이 손전화가 부르르 떨었다.
“어제 저녁에 전화했어야 했는데. 오늘, 들어갈게.”
시인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났다. 전날 저녁 시인은 전화했다. 진보적 주간지의 청탁을 받은 볼음도 나들길 취재를 위한 배 시간 때문이었다. 하루 두 번 밖에 없는 배편으로 1박을 해야만 했다. 당일치기는 월요일 아침에 한 번 있는 행정선을 이용해야 가능했다. 시인은 고민했으리라. 그리고 새벽 전화를 했다.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걸어 섬을 일주했다. 시인은 디카로 천연기념물 은행나무와 몇 장 풍경을 담았다. 볼음도 저수지 제방 멀리 아지랑이가 가득했다. 어느새 봄이었다. 나들길 민박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무엇인가 허전했다. 시인과 나는 만나기만 하면 때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않고 술부터 찾았었다. 그런데 둘 다 술을 끊었다. 시인도 벌써 1년이 되었다. 머리 속의 나사가 두어개 빠진 얼빠진 표정으로 우리는 부지런히 밥숟갈만 놀렸다. 하루 두 번 밖에 없는, 섬을 떠나는 2시 배가 선창에 닿았다. 시인이 건네 준 ‘눈물은 왜 짠가’ 개정증보판이 내 손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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