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대빈창 2014. 3. 17. 04:36

 

 

책이름 :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지은이 : 한창훈

펴낸곳 : 문학동네

 

갈치 / 삼치 / 모자반 / 숭어 / 문어 / 고등어 / 군소 / 볼락 / 홍합 / 노래미 / 병어 / 날치 / 김 / 농어 / 붕장어 / 고둥 / 거북손 / 미역 / 참돔 / 소라 / 돌돔 / 학꽁치 / 감성돔 / 성게 / 우럭 / 검복 / 톳 / 가자미 / 해삼 / 인어

 

이 책에 등장하는 30종의 해산물이다. 여기서 29종은 작가가 낚시로 직접 잡거나 갯바위에서 손으로 거둔 것이고, 마지막 챕터의 인어는 믿거나말거나 이지만 작가는 있다고 우겼다. 부제는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다. 여기서 자산어보는 흑산도로 유배 간 실학자 손암 정약전이 지은 해양생물 박물지로 일종의 흑산도 바다 동식물 사전이다. 단락마다 글의 도입부는 자산어보에서 부분 인용했고, 낚시와 채취, 요리법과 맛 그리고 해산물을 둘러 싼 사람살이가 뒤를 이었다. 책을 읽어 나가다 새로운 사실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갈치의 비린내는 비늘이 산소를 만나 생기는 산화작용, 즉 산패 때문이다. 지구 생태를 위해 바다낚시는 몹쓸 짓이었다. 남극바다에서 해마다 수천톤씩 잡아들이는 크릴은 90%가 낚시 미끼로 쓰였다. 이로 인해 남극 크릴새우의 80%가 사라졌다. 바다낚시로 인해 남극의 펭귄, 물개, 고래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였다.

나도 섬에서 살아 바닷고기에 대해 몇 마디 말부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회를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초고추장을 찾을 때 듣게 되는 구박이다. 표지그림의 비늘과 꼬리지느러미는 분명 숭어다. 열흘 전 볼음도에 건너갔다. 먹을 복이 있는 지 올 들어 처음 회 맛을 봤다. 아는 형님 집에 들렀더니 숭어 닦달이 한창이었다. 접시에 수북이 회가 쌓였고 양념장을 준비했다. 파를 듬뿍 썰어 고추장에 개었고, 고추냉이 간장 그리고 군내 나는 묵은지가 포기 채 놓였다.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찬바람 속에 입에 우겨 넣는 숭어회가 그렇게 달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포식했다. 배가 든든했다.

내가 가장 손꼽는 회는 농어다. 거문도는 새끼를 깔따구라 부르고 루어로 낚지만, 주문도는 깔때기라 하고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미끼로 단다. NLL의 섬 말도는 농어 구덩이다. 어선 출입 금지구역이라 갯바위에서 낚시만 던지면 농어가 무섭게 붙었다. 날이 풀렸다. 이제 농어가 본격적으로 들 때다. 뻘그물에 든 산 농어를 kg당 2만원이면 쉽게 살 수 있다. 농어는 생명력이 강했다. 산 놈을 함지박의 찬 지하수에 풀어 놓으면 일주일 이상을 활발하게 움직였다. 내가 군소를 처음 본 것이 20여년이 되었다. 동해안 삼척 부근의 작은 어촌이었다. 초여름이었다. 바닷가 철책을 주민들이 드나들 수 있게 처음 개장한 날이었다. 토배기로 보이는 젊은이 서너 명이 수경을 쓰고 손에 삼지창을 든 채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오들오들 떨며 그들은 번갈아 바다에 뛰어들며 갯바위에 갓 잡은 고기를 던졌다. 멀건이 구경하는 내게 즉석에서 회를 치던 그들이 된장을 찍은 한 점을 건넸다. 말그대로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무슨 회죠?” “노래미” 그들이 커다란 달팽이 같은 것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한 점 더 얻어먹고 싶었으나 그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들의 대화에서 이 한마디를 건졌을 뿐이다. “군소” 작가의 말이다. ‘그래서 사실 이것, 말 안 해주고 싶다. 두고두고 나만 먹고 싶다’(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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