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반딧불 보호구역

대빈창 2014. 8. 22. 07:14

 

 

책이름 : 반딧불 보호구역

지은이 : 최승호

펴낸곳 : 뿔

 

코뿔소는 죽지 않는다 ; 도요새 ; 72편 ; 2000년

반딧불 보호구역 ; 뿔 ; 141편 ; 2009년

 

시인 최승호의 생태 시선집이다. 두 시집의 마지막과 처음을 장식하는 詩는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다. 동강댐 반대운동 시편이다. 하도 빽빽해서 내가 정확한 갯수를 파악했는지 의문이다. 무려 11쪽부터 16쪽에 걸친 1연에 등장하는 동강 유역 산림생태계 생물상은 모두 711 개체였다. 그리고 2연은 시인의 상념으로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동강 유역 산림생태계 조사보고서」(1998. 12. 산림청 임업연구원)을 읽으면서 / 내가 아무르장지뱀이나 / 용수염풀, / 아니면 바보여뀌나 큰도둑놈의갈고리나 괴불나무로 / 혹은 더위지기로 태어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 그랬더라면 내 이름이 어떻든 / 이름의 감옥에서 멀리 벗어나 / 삶을 사랑하는 일에 삶이 바쳐졌을 것이다. / 무덤에 핀 할미꽃이거나 / 내가 동굴에서 날개를 펴는 / 관박쥐라 해도 ······.

 

2연에 나오는 생물 개체는 8개로, 1연의 열거된 이름에 굵은 고딕체로 표시했다. 시선집은 3부에 나뉘어 140여 편의 시가 실렸는데, 수많은 생물들을 섬세하게 포착한 핍진한 관찰력이 압권이었다. 시선집은 自序도 시인의 말도 해설도 없다. 달맞이꽃 - 산골, 억새꽃 - 하늘, 늙은 말잠자리의 고독 - 연못, 허물 - 매미. 시집의 차례에서 앞에 실린 4편의 시제(詩題)와 고딕체의 단어를 짝 지웠다. 나는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인쇄 과정의 실수인지 모르겠다. 마지막 시 ‘수박’을 읽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시인의 최근 시집 ‘아메바’의 리뷰에 인용한 시 구절이었다.

 

나는 간빙기(間氷期)의 인간이라고 한다. 거대한 얼음의 시간과 얼음의 시간 사이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크로마뇽인들은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다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 죽었다.(‘수박’의 부분, 177쪽)

 

표지 그림에서 앞 표지는 반딧불이와 달맞이꽃과 칠성무당벌레이고, 뒷 표지는 ‘이것은 죽음의 목록이 아니다’의 생물상들을 나열한 활자로 빼곡하다. 샛노란 속표지가 반딧불이의 반딧불을 연상시켰다. 1982년 11월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 일원이 한국 최초의 반딧불이 보호구역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2002년 1월 보호구역이 해제되었다. 보호구역 내에 골재회사가 들어서 하천 골재를 긁어내 도로를 포장하고, 하천둔치 정비 공사를 벌였다. 덕유산 정상의 무주 리조트 공사로 3년 동안 계류는 시뻘건 흙물이 흘러 내렸다. 반딧불이의 먹이인 다슬기가 사라졌다. 대한민국은 막가파 토건국가였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림일기  (0) 2014.09.04
게 눈 속의 연꽃  (0) 2014.09.01
소로우의 강  (0) 2014.08.20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0) 2014.08.18
쫓기는 새  (0) 201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