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지은이 :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린이 : 기욤 아르토
옮긴이 : 이세욱
펴낸곳 : 열린책들
옮긴이 이세욱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로 낯익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고국인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것은 개미 문명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개미(Les Fourmis)」의 명성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 작품은 300년밖에 되지 않은 인간의 오만함을 1억만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동안 살아남은 개미들의 눈을 통해 빗대서 경고했다. 책은 ㄱ항. '각막으로 빛살이 들어오면'에서 ㅎ항. '히포다모스'까지 170개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항목 대부분이 개미와 연결되어 설명된 잡동사니 백과사전으로,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경이롭게 그려냈다. 표지 그림과 본문의 그림 모두 네 모서리에 테이프를 뗀 자국이 선명하다. 나는 예전 책을 구입하자마자 앞날개와 뒷날개를 스카치테이프로 고정시켰다. 세월이 흐르면 접착풀이 누렇게 변색되고 테이프가 떨어지면 이런 자국이 남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쥐들의 외통(外通)〕- 꼬리를 매듭처럼 풀어지지 않게 엮은 채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이를 구하지도 못하는 궁지에 빠진 쥐들이 발견되는데, 쥐들 수는 열둘에서 서른둘까지 다양하다. 18세기 독일에서는 이 현상이 80회 이상 발견되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박물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간충의 여로〕 - 간충은 양(羊)의 간에 번식하는 기생충으로 양의 혈액과 간세포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성충이 되어 알을 깐다. 알들은 대변과 함께 바깥세상으로 나와 작은 애벌레로 숙주인 달팽이에게 먹힌다. 애벌레는 달팽이 몸속에서 성장하여 달팽이가 내뱉은 끈끈물에 휩싸여 배출된다. 끈끈물은 개미를 유혹하여 간충은 개미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간충은 개미의 몸 안 여기저기 흩어지는데 그중 한 마리 애벌레가 개미의 뇌에 뿌리박고 개미의 행동을 조종한다. 개미는 양들이 좋아하는 개자리와 냉이 꼭대기에 올라가 양으로 하여금 잡아먹힌다. 이것이 간충의 성장주기가 완성되는 여로다.
나는 두 항목을 접하며 레드 콤플렉스라는 족쇄에 사로잡힌 시민이 아닌 국민과 연일 국가와 안보를 외치는 맛이 간 인간으로 세뇌시켜 애국주의자들을 양산하는 이 땅 지배계급의 가증스런 이데올로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 항목은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여 미래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인간의 진화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이 지속된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판단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미 역진화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인류는 지구라는 별에 생존할 수 있다. 값싼 화석연료가 동이 나면 인류의 2세기에 걸친 산업문명은 자기 종의 멸종에 도전한 호모 사피엔스의 어리석음을 기록하는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