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쫓기는 새
글쓴이 : 최성각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13년 8월 9일 1판 1쇄 펴냄. 학수고대했다. 25여년 책을 가까이 하면서 이토록 책이 나오길 갈구했던 적이 있었던가. 세상에 막 고고성을 터뜨린 새 책을 성질 급한 나는 곧바로 손에 넣었다. 두툼했다. 무려 566쪽이었다. 맛있는 사탕을 아껴먹는 아이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선뜻 책갈피를 뒤적이는 것마저 저어되었다. 책장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배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랬다. 나는 소설집을 무척 아꼈다. 그리고 실천문학이 고마웠다. 그만큼 이 땅의 독서풍토는 생태소설을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불모지였다. 책에 실린 글들은 1989년 중편소설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부터 2009년 ‘은행나무는 좋은 땔감이 아니다’까지 작가의 20년 필업(筆業)이 온전히 담겼다.
내가 이 책을 기다린 이유가 문학평론가 김욱동의 해설에 잘 담겼다. 작가 최성각은 ‘한국 녹색문학을 가늠하는 잣대요, 리트머스 시험지’(538쪽)로 소설집은 ‘그동안 한국의 환경운동이 걸어온 고단하고 굴곡진 발자취가 마치 고생물을 간직한 화석처럼 고스란히 각인’(537 ~ 538쪽)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 구성이 특이했다. 1부는 단편소설, 2부는 중편소설, 3부는 엽편소설을 묶었다. 각 부마다 내가 예전에 이미 읽은 한 편 씩의 작품이 들어 있었다. ‘은행나무는 좋은 땔감이 아니다’는 녹색평론 후원자 인연으로 격월간 생태잡지를 통해서,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는 작가의 절판된 소설집을 이곳저곳 불을 켜고 찾다가 운 좋게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는 단행본을 손에 넣었다.
작가를 다시 책으로나마 만난 지가 5년이 되었다. 작가의 등단작 ‘잠자는 불’을 표제로 삼은 소설집을 잡은 지 20년이 넘었다. 탄광촌 출신 후배를 만나고 예전에 읽었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작가를 떠올렸다. 소설집들은 절판되었고, 나는 간신히 엽편소설집인 ‘사막의 우물 파는 인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때 작가는 춘천의 구석진 산골짜기 퇴골(退谷)에서 오두막을 짓고 오리와 닭과 개를 키우고 장작을 패는 삶으로, 탐욕에 찌들어 생명이 깃든 유일한 별 지구를 끝 모르게 추락시키는 문명 시스템에 저항(?)하고 있었다.
반가웠다. ‘풀꽃평화연구소’가 발행하는 웹진을 통해 작가의 근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야 나의 탐욕을 조금이라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내 방이 한층 환해진 느낌이다. 나는 다 읽은 책을 아주 오래 묵은 ‘김정한소설선집’ 곁에 꽂았다. 그것은 이 소설집이 제30회 요산문학상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한국 문단의 큰별이셨던 요산 김정한과 실천적 환경운동 작가인 최성각. 이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을 찾기도 힘들 것 같다. 나는 요산하면 먼저 일제강점기 붓을 꺽은 강단부터 떠 올랐다. 그리고 최성각은 온갖 ‘공해 오염의 실험장'으로 전락한 이 땅에서 녹색문학의 바로미터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