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무림일기
지은이 : 유하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은 1부 ‘인생 공부’15편, 2부 ‘武林일기’ 16편, 3부 ‘영화 사회학’ 18편, 4부 ‘죽도 할머니의 오징어’ 17편, 모두 66편이 실렸고, 해설은 동갑내기 시인 함성호의 ‘풍자이고 해탈인,’이 마무리를 맡았다. 해설에 초판본(세계사, 1995)의 김현의 해설을 인용했다. '만화(- 영화), 프로레슬링, 무협소설(/영화), 초능력자에 대한 이야기, 영화, 삼류 포르노 영화(/소설) 등, 다시 말해 예술비평에서 키치Kitsch적인 것이라는 말로 흔히 통용되는 범주의 것들 ······. 소비하는 자신의 문화적 의미를 반성하는 것이 그의 시가 연 새 지평'(157쪽)으로 2부의 시 9편은 부제가 '무림일기'이고, 3부 18편은 부제가 전부 '영화 사회학'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박통 시절, 박통 터지게 인기 있었던 프로레슬링 / 김일의 미사일 박치기에 온 국민이 들이박혀서 / 박통 터지게 티브이 앞에 몰려들던 프로레슬링 / 흡혈귀 브라쉬 / 인간 산맥 압둘라 부처 / 전화번호부 찢기가 전매특허인 에이껭 하루까 / 필살의 십육 문 킥 자이안트 바바 / 빽드롭의 명수 안토니오 이노끼 / 그 세계적인 레슬러들을 로프반동 / 튕겨져 나오는 걸 박치기! 당수! / 또는 코브라 트위스트, 혼쭐을 내주던 / 김일 천규덕의 극동 태그매치 조
‘프로레슬링은 쑈다!'(63쪽)의 1연이다. 나는 시인과 동년배로 어린 시절, 프로레슬러에 얼마나 열광했던가. 시에 등장하는 레슬러들의 주특기가 머리 속에 환하게 그려졌다. 프로레슬링이 생중계되는 날, 학교가 파하면 꼬맹이들은 족대를 들고 마을 앞 수로로 달음박질쳤다. 미꾸라지, 붕어, 송사리, 개구리 심지어 두렁어리까지 마구 페인트 깡통 하나 가득 채웠다. 개흙이 잔뜩 묻은 까까머리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대높은 집 안마당에 펼쳐 진 멍석에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집안일로 고기를 잡지 못한 애들은 입장을 거절당했다. 그 시절, 대높은 집은 동네 유일의 티브이가 있던 집이었다. 깡통의 산 것들은 티브이 주인댁이 여러 마리 키우던 돼지들의 먹이였다.
밤늦게 떡볶이 먹다 떡볶이 집 아줌마한테 유혹당한 / 나는 떡제비였다?(101쪽) '그로잉 업'의 한 구절이다. 나는 여기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 권상우를 유혹하는 떡볶이 집 아줌마 김부선을 떠올렸다. 유하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쌍화점’ 등 영화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원래 시인으로 ‘무림일기’는 그의 첫 시집이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은 겉표지의 컷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시집은 컷이 앞날개로 옮겨갔다. 꼬리표 R이 달렸다. 여기서 R은 복간(Reissue), 반복(Repetition), 부활(Resurrection)을 뜻 한다. 시인선 R은 다양한 사정으로 절판되었거나, 출판사가 폐문당해 독자에게 가는 통로가 막힌 시집들을 새로 선보이는 시리즈인데 현재까지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는 없는 계절이다’,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 그리고 이 시집까지 5권이 재출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