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민주주의에 反하다
지은이 : 하승우
펴낸곳 : 낮은산
이 책은 주장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식행위에 불과한 정치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고. 즉 민주주의를 되돌리는 민주주의를 뒤집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 땅은 정치적인 부패가 널리 퍼진 곳, 돈으로 권력을 살 수 있는 곳, 파벌이 정의를 압도한 곳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민중의 삶을 옥죄고 있다. 재벌의 사적 소유는 점점 커졌다. 재벌가의 대표 삼성은 수출의 24%를 차지하고, 국내 총생산의 1/5를 차지한다. 2010년 전년도에 비해 삼성의 전체 매출액은 11.8%가 늘고, 당기 순이익도 48.5%나 증가했다. 가히 삼성공화국이다. 그런데 이 땅 사람들은 삼성이 나라 경제의 기둥이므로 비리나 부정에 나몰라라다. 아니 ‘삼성맨’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대학생들은 이건희를 닮고 싶어 한다. 삼성가의 노골적인 범죄행위가 드러나도, 삼성반도체 여공들 수십 명이 백혈병으로 죽어도, 하청업체의 기술을 뺏고, 지불할 돈을 떼먹어도 삼성은 지켜야 할 중요한 기업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자기도취에 빠진 이 땅 보통 사람들의 경제성장 중독증은 눈에 심각한 백태가 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농촌지역의 한 지방자치단체 사업소장은 사무실에서 쓰는 모든 물품과 자재를 ‘메이드 인 삼성’으로 구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철저하게 세뇌당한 그의 눈에 가진 자의 착취와 수탈, 억압은 이 땅의 자랑스런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미국의 아나키스트 헤나시는 매년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일이 오면 하루 동안 단식했고, 연방정부 건물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고 비꼬았다. “아뇨,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확신합니다.”(316쪽) 이 땅은 이미 21개의 핵발전소가 가동하고, 현재 7개를 더 짓고 있으며, 2030년까지 핵발전소가 40개까지 늘어날 것이다. 가히 ‘원자력 르네상스’를 부르짖는 나라답다. 밀양송전탑 건설 반대투쟁의 할배·할매들의 눈물이 보일 리 없다. 서울의 전력 자급율은 1.9%로 이것도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전국 곳곳에 세워지는 송전탑은 전기를 나눠쓰는 장치가 아니라 지방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로 보내는 장치다. 서울 시민의 소돔과 고모라를 유지하기 위한 불야성을 위해 지방주민은 고스란히 송전탑 피해를 뒤집어써야 했다. 이것을 ‘내부식민지’라 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협상무효, 미친 소 미친 교육, 국민 주권, OUT 이명박, 미친 소 반대, 조중동 보수언론 반대, 의료보험 놔 둬, 소통 단절 탄핵, 민영화 반대. 표지그림 최호철의 「2008 촛불대행진」에 등장한 구호를 순서 없이 나열했다. 이 책의 화두는 존엄, 주권, 공동체, 주민투표, 시민불복종, 협동조합, 평화 등으로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역사에서 있었던 민중의 직접행동을 되살렸다. 1922년 일제시대 소안도토지계쟁사건(土地係爭事件)은 소안도 주민들이 자신들의 땅을 돌려받기 위해 무려 13년간 소송을 벌였다. 섬 공동체로 싸워 소송에서 이긴 주민들은 땅을 돌려받은 이후 공동의 이익을 위해 맨 먼저 한 일이 학교를 세웠다. 또한 ‘함께 일하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구조’의 공동어장을 운영했다. 2003 ~ 2004년 부안 핵폐기장 처리장 반대 투쟁은 정부 없이 주민 자치를 실현했다. 주민들 스스로 투표를 준비하여 정부의 집요한 방해공작을 이겨내고 72% 참석과 92% 반대의 주민투표를 성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