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게 눈 속의 연꽃
지은이 : 황지우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전철은 사람을 싣고 서울로 오지만 / 빈 전철은 사상을 싣고 인천으로 간다(인천으로 가는 성자들 / 부분, 80쪽)
전화 속에도 / 그물이 있다 / 그물 사이로 / 弟嫂氏와 이야기한다 / 인천 집 팔았소? / 서대문 로터리에서 서울역 쪽으로 가다 보면 / 치안본부 고층 건물 옥상의 안테나塔 / 인천으로 들어오기로 한 선박이 왜 안 와요(날개 속에 그물이 있다 / 3연, 108 ~ 109쪽)
나는 이 시편들을 읽으면서 시인의 동생 황광우를 떠올렸다. 80년대를 힘겹게 건너 온 이들의 옆구리에 필독서 두 권이 있었다. 이른바 금서였다.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책의 저자가 ‘정인’으로 황광우의 필명이었다. 황광우는 으뜸 이론가로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 17대 총선 광주 남구 후보였다. 형제는 쌍둥이처럼 겉모습이 닮았다. 시인은 동생의 선거대책본부장으로 뛰어다녔다.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었다 / 普光의 거품인 양 / 눈꼽 낀 눈으로 / 게가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피워 올렸다 / 눈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연꽃을 / 게는, 그러나, 볼 수 있었다
표제작 ‘게 눈 속의 연꽃’(32 ~ 34쪽)의 2연이다. 시집은 시인이 문학적 스승인 문학평론가 김현에게 받치는 헌사였다. 시인은 파주 보광사 벽화에 게 눈 속에 연꽃이 그려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승을 모시고 어느 봄날 소풍을 갔다. 그런데 탱화의 게 눈 속의 연꽃은 없었다. 스승은 1989년 작고했고, 시인은 自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누더기 옷 한 벌을 감히, 김현 선생께 바치고 싶다.’
시집은 ‘華嚴光州’로 끝을 맺었다. 소제목으로 ‘전남대학교 정문’, ‘공용 터미널’, ‘광주 공원’, ‘광천동’, ‘끝없이 북으로 뻗친 江’, ‘도청’을 단 연작 장편시로 이 땅의 곪아 터진 상처를 끌어안았다. ‘광주 공원’은 두개골이 으깨어진 두 구의 시신 흑백사진이 실렸는데, 사진 아래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읊었다. 1987년 야권단일화 후보 실패로 광주항쟁 학살자가 정권을 잡자, 시인은 분노와 좌절로 무등산 자락에 칩거했다. 배롱나무 군락으로 유명한 담양 명옥헌이 한 눈에 보이는 작업실에서 2년여 고통의 산물이 이 시였다.(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눈동냥했다.) 또다른 연작시로 산해경(山海經)을 패러디한 '山經'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길 가는 이들이여 / 그대 비록 惡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 藥과 마음을 얻었으면, /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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