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는 꽃 도둑이다

대빈창 2014. 9. 24. 07:27

 

 

책이름 : 나는 꽃 도둑이다

글쓴이 : 이시백

펴낸곳 : 한겨레출판

 

청심회 - 청계천 주변에서 가까이 지내온 이웃끼리 만든 친목계(10쪽) - 회원들은 파출소의 강형사에게 끌려가 어느 날의 하루 일과를 곧이곧대로 진술서로 작성한다. 공유수면의 잉어를 잡아먹은 것이 죄명이었다. 소나기로 한강물이 불어나면서 청계천을 거슬러 오른 잉어를 회원들이 복달임으로 매운탕을 끓여 소주를 곁들였다. 끌려 온 이는 황학동 만물상회 주인으로 모임의 회장인 황치산, 김치공장 공장장으로 총무를 맡은 김명식, 에덴 미용실 바깥주인으로 이발사인 송재록,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인 심흥복, 탈북자 양경일, 촛불집회 양초장사 임진근, 야바위꾼 김노천, 특수임무 지구대 박금남 등. 하지만 사건의 내막은 청계천 정비 사업을 벌인 현 대통령으로 전(前) 시장이 박은 명판의 도난사건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되어 시장 시절 자신의 업적인 청계천을 보러 오겠다는데 명판이 없어졌다. 파출소장은 똥끝이 타 들어가 범인 색출에 혈안이 되었고, 진술서의 내용은 청계천변에 몸 붙이고 살아온 청심회원들의 일상사였다.

애국 시민 대통령 표창에서 떨어진 앙갚음으로 도둑질한 특수임무 박금남은 죄 없는 안 목사 내외를 고자질한다. 안 목사 외아들 반석은 유신정권 때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잡혀 모진 고문으로 정신줄을 놓아 30년째 정신병원에 입원중이다. 안 목사는 종이박스와 빈병 수거로 안주인인 신 권사는 청계천변에 꽃 심는 취로사업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렸다. 꽃 도둑으로 신 권사가 검찰로 넘어가자 안 목사는 충격으로 죽음을 맞는다. 이 외에 땡중인 묘적선사와 베트남인 응우 옌띠비엔, 스리랑카인 추린, 몽골인 바토르와 토건업자 종백, 스웨터 내수공업 사장인 특수임무 마누라와 '먹도날드‘ 분식집 사장인 명식의 아내, 키스방 알바인 경순 등이 '돈이 있으면 천국이지만 없으면 지옥이나 다름없는 자본주의의 매운 맛'(96쪽)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가 말을 죽였을까’와 ‘갈보 콩’에서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냈던 작가는 서울 청계천변의 서민들을 통해 이 시대의 욕망과 허위의식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작가의 리얼리즘은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민중의 사투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 소설은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술하는 한편 이북 사투리까지 등장한다. 작가는 이 시대 민중의 파탄 난 윤리적 혼돈을 경제 지상주의, 초법적 반공주의, 극단적 개별주의, 무한경쟁 성공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탈북 이주민·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종 차별주의에 목을 맨 타락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드러냈다. 전시행정과 업적주의, 시대착오적인 부패한 토목공사에 기반한 녹색성장의 허구에 매달려 날것 그대로의 욕망을 드러내는 청계천변 장삼이사들은 ‘여전히 비에 불어 난 개천을 따라 올라왔다가 길을 잃고 풀밭에 널려 있는’(226쪽) 잉어들과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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