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겨울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
지은이 : 황지우
펴낸곳 : 민음사
시집은 부 구분 없이 모두 60 시편이 실렸다. 후반부 몇 편의 시에 潭陽 水北이라는 지명이 등장했다. 나는 즉각 별서정원 명옥헌과 시 ‘華嚴光州’를 떠올렸다. 하지만 ‘화엄광주’가 실린 시집은 ‘게 눈 속의 연꽃’으로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 아닌가. ‘두번째 시집을 내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징검다리 - 돌 하나(1983년), 돌 둘(1985년)을 내 놓아 내 갈 길을 만든다. 그렇다. 여기서 돌 하나는 첫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이고, 이 시집은 돌 둘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초판이 1985년에 출간되었다. 순서 없이 시인의 시집을 잡은 나의 착각이었다.
황지우의 시는 기존의 전통적인 시 관념을 깨고 기발한 시적 발상과 형식적 파괴, 일탈의 실험적인 시들로 독자에게 충격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시편들은 민방공 훈련, 부산미문화원사건, 이산가족찾기, 불심검문, 쥐잡기, 국기하강식, 한미합동군사훈련, 정신대할머니, 김지하, 민주화 광장, 윤상원, 페퍼포그카, 워키토끼, 노동악법, 국민보건체조, 노점상 단속 등 파행적 군부독재와 협잡한 자본주의 일상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80년 5월 광주의 잔혹성과 지배이데올로기의 허구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모든 현실은 지옥이다. 그때마다. / 특히, 제3세계 신생국들 가운데 일반화되었던 <일당독재현상>은 그들의 反식민주의·反제국주의 투쟁의 역사위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없다, 있다, 없다, 그렇다 없다, 아니다 있다, ······ (버라이어티 쇼, 1984 中에서 / 56쪽)
시인은 80년 5월 어느 날 광주 시민 학살을 규탄하는 유인물이 든 가방을 들고 종로 단성사 앞으로 나갔다. 손에는 안개꽃 다발을 든 채. 하지만 시인은 손목이 등 뒤로 묶인 채 끌려갔다. 지옥의 고문실에 거꾸로 매달려 몸부림쳤다.
“내가 시를 쓰게 된 건 우리 사회 때문이었죠. 80년 5월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죠. 그 모진 지옥에서 한 계절을 보내면서 증오의 힘으로 시를 썼습니다.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여기서 표제작 ‘겨울 - 나무로부터 봄 - 나무에로’(81 ~ 82쪽 / 전문)를 읊지 않을 수 없다.
나무는 자기 몸으로 / 나무이다 /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은 몸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 아아, 마침내, 끝끝내 /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 꽃 피는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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