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맨발 / 가재미
지은이 : 문태준
펴낸곳 : 창비 / 문학과지성사
맨발 ; 2004년 ; 3부 - 60편 ; 이희중 - 풍경의 내력 ; 가장 좋은 시집.
가재미 ; 2006년 ; 4부 - 67편 ; 이광호 - 극빈의 미학, 수평의 힘 ; 가장 좋은 시.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표제작 ‘가재미’(40 ~ 41쪽)의 부분이다. 병상의 큰 어머니에 대한 시적묘사로 회자된 이 시는 2005년 시인과 평론가들이 뽑은 문예지에 실린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되었다. 올해의 가장 좋은 시집 ‘맨발’(2004년).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인. 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시인은 세 권의 시집,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2000년)과 위 두 시집으로 동서, 노작, 유심, 미당, 소월시문학상 5개를 휩쓸었다. ‘가재미’는 초판 3,000부도 소화하기 힘든 이 땅의 시집 독서계에서 무려 2만부를 거뜬히 넘겼다. 문단에서 시인을 한국 서정시 가계의 적자라고 불렀다.
나의 독서는 그동안 시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책장은 두 손으로 꼽기에도 모자르는 부피 얇은 시집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문태준 시집 3권이 어깨를 나란히 겯고 있다. 서정시의 적자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던가.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인의 첫 시집 표제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수런거리는 뒤란‘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란 김포 들녘 언덕빼기 초가집을 떠올렸다. 장마에 물먹은 흙벽돌이 무너져 멍석을 두른 가난이 덕지덕지 묻은 집. 그나마 어머니의 손길로 간신히 집의 형상이나마 유지하던 집. 나의 뇌리에 각인된 그 집 풍경은 어머니의 손길이 줄곧 머물렀던 장독대가 자리한 뒤란이었다. 아름드리 참나무의 넓게 퍼진 가지와 얼기설기 엮인 늙은 뽕나무가 병풍을 드리워 한여름의 폭양과 엄동의 찬바람을 막아 주었던 곳. 가난으로 슬픈 어머니의 손길로 반들반들 윤이 났던 항아리들. 농경사회의 서글픈 풍물을 그린 '겸손한 서정성'이 그리웠다. 이후 시인은 두 권의 시집을 더 상재했으나 나는 묵은 시집 두 권을 다시 손에 들었다.
비가 오려 할 때 /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비가 오려 할 때 / 전문, 맨발 /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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