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홍어
지은이 : 김영재
펴낸곳 : 책만드는집
출판사 이름과 표제가 눈길을 끌었다. 4부에 나뉘어 68편과 문학평론가 이경철의 해설 ‘오체투지의 삶에서 우직하게 우러난 진짜 민족시’가 해설로 실린 시집은 책술이 얇은 양장본이다. 대부분이 단시조로 엮어진 시집은 6년 만에 새로 펴낸 시조집이다. 여적 시에 눈도 트지 않은 내가 시조집을 잡게 된 연유는 녹색평론에 있다. 나의 아둔함은 시집을 고르는데 애를 먹었다. 궁하면 통하는가. 격월간지 녹색평론에 소개된 시집을 불문하고 손에 넣었다. 그중의 한권이다. 시인은 틈만 나면 산행을 하고 국토 구석구석을 누볐다. 이 산하의 주름진 곳마다 머문 시인의 발걸음이 시편마다 알알이 배었다.
지리산 산동마을, 직소폭포, 하늘재 미륵사지, 오대산 상원사, 변산 곰소, 선운사 도솔암, 청도 운문사, 운주사 와불, 송광사 불일암, 북한산 향로봉, 적멸보궁, 월정사 전나무 숲, 임진각 기차역, 용문사 은행나무, 소백산 죽령, 광릉 국립수목원, 다산초당 정석, 변산 채석강, 소백산 단양읍 어의곡, 간월도, 금둔사.
술 취한 친구의 한 잔을 위하여
잘 삭은 홍어 되어 몸속으로 빨려든다면
어두운 살의 바다에 독한 냄새로 남으리
해일을 만나면 해일로 뒤집히고
알몸으로 만나면 알몸으로 섞이어
다시는 환생치 못할 썩어 푹 썩어 있을
표제작 ‘홍어’(15쪽)의 전문이다. 내가 홍어의 깊은 맛을 처음 만난 세월이 벌써 20여년이 다되었다. 전남 광주 결혼 잔치상이었다. 함께 간 동료들은 시금털털하고 퀘퀘한 내를 풍기는 회접시를 피했다. 내 입맛이 고리타분한 것인지 나는 처음 맛보는 홍어에 금방 끌렸다. 은단을 씹은 것처럼 혀뿌리까지 알싸한 맛에 이내 중독이 되었다. 김포도서관 앞 비좁은 골목의 허름한 슬레이트 홍어 전문집은 나의 단골 술집이었다. 어느해 겨울, 홍어의 진짜 맛을 보려 흑산도행 길을 나섰다. 목포항. 폭풍으로 여객선들은 발이 묶였고, 설상가상으로 남도 항구도시에 몇 십 년만의 폭설이 3일 내내 퍼부었다. 항구 골목에서 나의 홍어 맛 기행은 닻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외딴 섬에 터를 잡았지만 나는 홍어 맛을 잊을 수 없었다. 비싸다는 국산 홍어를 택배로 받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것이 큰 낙이었다. 어느 봄날 손바닥만한 나무도시락에 담겨진 삭힌 홍어에 입맛을 다시며 예닐곱명이 둘러 앉았다. 한 사람에 고작 서너 점이 차례 갈 안주를 아끼며 첫 술잔을 들었다. 그때 ‘불이야!’ 고함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다급히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불난 집으로 몰려갔다. 서너 시간만에 불길이 잡히자 우리는 입맛을 다시며 돌아왔다. 아뿔사! 이런 낭패가. 나무도시락을 텅 비었고, 홍어 한 점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도둑고양이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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