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가난한 사랑노래
지은이 : 신경림
펴낸곳 : 실천문학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 두 점을 치는 소리 /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표제작 ‘가난한 사랑노래’(32 ~ 33쪽)의 전문으로 부제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다. 여기서 젊은이는 지명수배자였다. 시인은 그때 서울 성북 길음동에 살았다. 종종 들러 막걸리를 들던 골목집의 딸이 어느날 시인에게 할 말이 있다면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손님들이 다 돌아가자 한 젊은이가 가게로 들어섰다. 딸의 남자친구로 지명수배중이었다. 체포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지를 시인에게 물었다. 시인은 축시를 써주고 결혼주례까지 맡았다. 하객 10여 명이 모인 작은 개척교회였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을 끝내고 시인은 가슴 저린 사연을 시에 담았다.
시집은 출간 25주년 특별 기념으로 2,000부 한정판으로 찍어냈다. 3부에 나뉘어 모두 53편이 실렸는데, 발문은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시력(詩歷) 30년 - 知天命의 詩 -」다. 내가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시절 「민요기행 1·2」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農舞」를 통해 소외된 농촌의 열악한 현실상황을 민중의 삶에 뿌리박은 빼어난 서정성으로 읊은 절창에 가슴이 먹먹했다. 지천명을 넘긴 시인은 도시 빈민의 고달픈 삶에 가닿고 있었다. 초판 시인의 말이다.
시골이나 바다를 다녀보면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열심히 산다. 나는 내 시가 이들의 삶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내 시가 그들의 생각이나 정서를 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표지그림이 반가웠다. 판화가 남궁 산의 장서표다. 「인연을, 새기다」를 펼친다. ‘선생에게 헌정한 장서표에 더불어 홀로 길을 가다 망중한에 있는 새 한 마리가 사는 이유다.’ 장서표 판화는 새순이 돋아나는 나뭇가지에 앉은 고개를 외로 꼰 새 한 마리의 옆모습이다. 시집의 표지 그림과 다르다. 시집 표지 장서표는 해를 후광으로 나뭇가지에 앉은 정면을 향한 까치가 옆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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