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풀들의 전략

대빈창 2014. 6. 20. 05:19

 

 

책이름 : 풀들의 전략

지은이 : 이나가키 히데히로

그린이 : 미카미 오사무

옮긴이 : 최성현

펴낸곳 : 도솔 오두막

 

제비꽃 / 큰개불알꽃 / 별꽃 / 광대나물 / 둑새풀 / 살갈퀴 / 쇠뜨기 / 냉이 / 민들레 / 개망초 / 광대수염 / 클로버 / 새포아풀 / 참나리 / 질경이 / 괭이밥 / 타래난초 / 쇠비름 / 방동사니 / 땅빈대 / 닭의장풀(달개비) / 바랭이 / 반하(끼무릇) / 피 / 개구리밥(부평초) / 메꽃 / 오리새 / 메귀리 / 강아지풀 / 단풍잎돼지풀 / 어저귀 / 큰달맞이꽃 / 칡 / 쑥 / 별꽃아재비 / 금방동사니 / 마름 / 계요등 / 망초 / 도꼬마리 / 석산 / 새삼 / 물옥잠 / 물달개비 / 개여뀌 / 참억새 / 양미역취 / 고마리 / 부들 / 갈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0가지의 잡초다. 이 책은 50가지 잡초의 생존전략이 생생한 그림과 함께 펼쳐져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는 행운아였다. 이 책에 나오는 세밀화의 도움으로 아침저녁 산책길 발밑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들꽃과 풀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삶과 자손들의 번영을 도모하는 잡초들의 눈물겨운 생존법에 나는 혀를 내 둘렀다.

잡초들의 방대한 양의 씨앗은 땅 속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이 씨앗 집단을 ‘씨드 뱅크(seed bank)' 즉 종자은행이라 한다. 어저귀는 뿌리로부터 다른 식물의 생육을 억제하는 ’알레로파시(allelopathy)'를 분비하고, 참나리는 멧돼지가 땅을 파헤쳐 뿌리를 먹을라치면 덩이뿌리를 폭파시켜 하나하나 새 개체로 성장하고, 방동사니는 땅속줄기를 뻗어 덩이줄기를 만들어 아스팔트를 들어 올려 땅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쑥은 수분증발을 막으려 잎 뒷면에 수많은 솜털을 붙여 통기성을 약화시키고, 계요등은 벌레의 공격으로 잎이나 줄기에 상처가 나면 세포 안에 축척한 ‘페데오리드’라는 악취나는‘머캡텐(Mercaptan)' 가스를 발생시켜 적을 물리치고, 제비꽃은 늦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자가수분을 하여 꽃도 안 피우고, 꽃가루도 만들지 않으며, 참억새는 잎 가장자리에 유리 성질의 가시기 톱니처럼 붙어 살을 베고, 골프장의 세포아풀은 잔디 깎는 방식을 유전자에 입력하여 크기가 다르게 자라고, 개망초는 드디어 제초제와 싸워 살아남을 수 있는 저항성을 획득했다.

어느 해 겨울 나는 NLL 의 섬 말도에서 일명 곰보배추라 불리는 배암차즈기 몇 포기를 캐 왔다. 배암차즈기는 겨울에도 잎이 말라 죽지 않고, 로제트 모양으로 넓게 퍼져 추위를 이겨낸다. 잎은 배추 잎과 모양이 닮았으나 크기가 훨씬 작고 앰보싱처럼 올록볼록하여 곰보배추라는 별명을 가졌다. 배암차즈기는 특히 기침감기, 해수, 천식에 신통한 특효가 있다고 한다. 해를 넘기고 밭가에 제법 진을 친 곰보배추를 이른 봄에 뿌리 채 캐 그늘에 말렸다. 말린 배암차즈기를 진하게 달인 물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기침이 멎지 않는 어머니는 달게 드셨다. 배암차즈기의 생명력은 끈질겼다. 아무리 뽑아내도 어디인가 숨어있던 몇 포기가 수많은 자손들을 퍼뜨려 겨울 텃밭은 온통 배암차즈기가 차지했다. 몇 해를 보내고나서 나는 배암차즈기와 공존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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