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어떤 청혼
지은이 : 정기복
펴낸곳 : 실천문학사
여섯 쪽을 갈라 / 한 쪽을 심어도 / 어김없이 육 쪽이 되는 마늘
서리 내린 논밭에다 / 두엄 뿌려 갈아 묻고 / 짚 덮어 겨울 나면 / 봄 앞질러 / 언 땅 뚫고 도는 새순
맵기는 살모사 같고 / 단단하기가 차돌 같은 단양 마늘
약값도 안 되고, 품값도 안 되는 것을 / 육순 노모 / 해마다 심는 정은 / 쪽 떼어 묻어도 / 육 남매 살 붙어 열리기 때문일까
‘단양 마늘’(45쪽)의 전문이다. 중학 생활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를 쓴 시인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첫 시집 ’어떤 청혼‘(’99년)과 동시집 ’생각하는 로댕‘(2005년) 두 권을 상재한 시인 정기복은 단양 출신이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모두 64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방민호의 ’유전(流轉)의 경험과 그 기억의 세계‘다. 2부의 용부원리 강신대, 황정리, 올산리, 유천동, 산동네 의풍리는 산업화·근대화로 공동화된 시인의 고향 마을로 행정구역명이다. 시편에 등장하는 죽령천, 단지소(沼), 소금무지산, 장회나루, 매포, 소백산, 부석사, 미륵사지, 죽령 매바위마을, 온달산성, 사인암, 영월 노루목 김삿갓 묘는 시인의 고향인 충북 단양 인근의 지명이다.
문학평론가가 말했듯이 '땅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눈물의 유전 끝에 서울에 다다랐다.' 시인은 고교를 한 학년 남기고, 교복을 찢고 학교를 때려치웠다. 부산 서면 뒷골목과 동해안 철책선의 군 생활, 그리고 대학시절 강릉 남대천 술집과 마포 강변 골방의 습작 시절. 시인은 현재 일산에 살며 택시를 모는 '바퀴노동자'다. 4부의 등단작 '7번 국도'를 비롯한 '입영전야', '부재자 투표', ‘오분대기조’, ‘날선 기억이 나를 ’은 병영국가 대한민국 시인의 군대체험을 여실하게 보여 주었다. 인생의 황금기를 철책 포로로 끌려가, 독재자를 찍을 수밖에 없는 부재자 투표와 무장탈영병을 사살하고, 철책선을 넘은 미친 여자를 사살한 공로로 특별포상휴가를 떠나는 동료 부대원, 야간경계근무가 몸에 배어 제대 3개월이 다 되어도 밤에 잠을 못 이루었다.
시집 ‘메나리 아리랑’처럼 묵은 시집은 속면지에 전산용지가 붙었다. 영광도서다. 단순하게 나는 전남 영광의 서점에 납품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5년이 지나 나의 손 안에 들어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첫 시 ‘황폐한 기억에 대한 단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영광도서 앞 나무탁자에 무늬로 앉아 바라다본 대아호텔 층층이 (······) 서면로터리 돌아 동보극장 뒷골목에 즐비했던 학원들’ 전산용지의 전화 지역번호를 다시 살폈다. 051이다. 영광도서는 부산 대아호텔 맞은편의 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