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장물바구니
지은이 : 한홍구
펴낸곳 : 돌아온산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 평화박물관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죄운동에서 출발하여 2004년 5월 임시총회를 거쳐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로 발족한지도 8년이 넘었습니다.
(······)
여러분의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홍구 상임이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의 신간 〈장물바구니-정수장학회의 진실〉을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내 드립니다.
(사) 평화건립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이 사 장 이 해 동
상임이사 한 홍 구
재작년 가을 편지가 갈피에 끼워진 책을 받았다. 공짜로 얻은 책이라 그런지 나의 손길은 한없이 게을렀다. 나는 18일간의 병원생활에서 벗어나 섬으로 돌아와 책을 펴들었다. 9층 병동 휴게실의 대형 벽면 TV는 24시간 뉴스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링거주사를 손목에 매단 채 휠체어에 앉은 환자들, 의자를 하나씩 꿰찬 보호자, 간병인들은 시도때도 없이 세월호 관련 뉴스에 질리지도 않는지 웬 종일 눈길을 모았었다. 엊그제 민간 잠수사 한 명이 또 죽었다. 두 번째다. 현재까지 288명의 사망자와 16명의 실종자를 낳은 세월호 침몰 참사로 나라 전체가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대한민국은 가장 기본적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과 무책임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얼굴을 지워버린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추구한 시장전체주의에 있다. 여객선의 사용연한을 30년까지 늘리고, 20년이 넘은 노후화된 배를 객실과 화물칸을 증축하며 용도변경을 허가했다. 돈이라면 염라대왕 이빨도 빼올 수 있는 한국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본과 권력의 탐욕이 빚어 낸 유착에 원칙과 기본은 없다. 나는 두렵다. 이 땅의 23개 원전은 짝퉁 부품으로 가동되고, 설계 수명이 다한 고리원전은 수명연장을 시켰다. 3년 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로 반경 30㎞이내 피난민은 16만명이었다. 그런데 이 땅의 남동 원전 벨트는 세계 최고의 인구밀집을 자랑(?)하고 있다. 상상하기도 끔찍한 사고가 터지면 340만의 인구는 도대체 어디로 피신할 것인가. 한국은 생각하는 능력이 마비된 반지성 사회로 돈 말고 다른 가치는 명함도 못 내미는 천민자본주의 사회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국가 개조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나는 왜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가. 박근혜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22억5천만원을 연봉으로 챙겼다. 그런데 정수장학회는 5·16 군사반란 세력의 캐비닛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국가폭력으로 한강이남 최고부자인 김지태를 인질납치 강도극으로 몸값을 협박하여 뜯어 낸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부산일보, 부산시내 금싸라기 땅 10만147평을 모은 「장물바구니」였다. 故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사정권은 남의 재산을 강탈할 권한을 마구 휘둘렀는데, 민주정부는 그 장물을 되돌려 줄 권한이 없었다. 과거사 정리가 제대로 안된 채 권력만 민주화되어 힘이 빠진 것이다. 부당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한테 더 좋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억울하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의 한계일 것이다.”
짧은 리뷰를 긁적이며 나는 온 몸이 짜부러졌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퇴원하고 오랜만에 ‘풀꽃평화연구소’ 사이트에 들렀다. 시인 친구 함민복의 '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이 눈에 밟혔다.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 솟아 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 옷장에 매달려서도 /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 나 혼자를 버리고 /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 우리 모두는 ··· /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 죄다
쏟아져 들어 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 가녀린 손가락들 /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 공기방울 글씨
엄마, / 아빠, / 사랑해!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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