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즐거운 읍내

대빈창 2014. 5. 28. 07:17

 

 

책이름 : 즐거운 읍내

지은이 : 최용탁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표지 그림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읍내의 부감도다. ‘읍내에 사는 사람들은 이 고장을 그저 읍내라고 부른다. (······) 그것은 순전히 읍내에 읍내리라는 지명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82쪽) 사위 박주오가 운영하는 홀인원과 첩의 딸 정아가 한때 몸담았던 술집 주신이 연상되는 임페리얼 스크린 골프장과 CARA가 상단에 보였다. 하단에 읍내 찜질방과 죽천 호프집 그리고 적재함에 몇 가지 짐을 얹은 포터와 오일장의 명물 먹을거리 장터에 장사치들과 술손님이 북적거렸다. 부동산을 하는 친구와 점심 겸 낮술을 하는 둘째아들 창오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이야기가 끝없이 계속되며 욕설과 삿대질이 오갔다. 모두들 눈이 시뻘개져서 며칠 밤이라도 새울 기세였다. 송이 눈이 쌓이는 그믐이었다.’ 1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인공 조백술이 재산을 두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자식들에게 열불이 나 밖으로 뛰쳐나오면서 소설은 끝났다. 소설은 한마디로 돈과 쾌락을 쫒는 인물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막장 드라마다. 부동산 투기와 개발 광풍으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조백술은 말그대로 졸부가 되었다. 기구한 팔자로 사는 스무살 아래 봉선댁을 첩으로 삼고 늦둥이 딸 정아까지 두었다. 중풍에 걸린 본처는 요양원에 입원시켰다. 큰아들 원오는 상가건물 세로 무위도식하며 돌팔이 시인 노릇에 우쭐하고, 아내가 신흥종교에 빠져 가출했어도 시큰둥하다. 둘째아들 창오는 되지도 않는 사업을 벌이다 모두 들어먹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바람난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외아들 병일은 가정불화 스트레스에 따른 폭식으로 거구의 몸이 되었다. 막내딸 은희와 사위 박주오는 얄미운 여우처럼 유산을 탐내고, 큰딸 명희와 둘째 딸 숙희도 드디어 마지막 유산 다툼에 온 몸을 내 던졌다.

소설은 주인공 조백술과 대비되는 한 가족이 등장한다. 머슴출신의 필재로 몸으로 때워 시골마을의 땅부자로 자수성가했다.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 하지만 세상팔자 알 수 없었다. 서울 명문대학에 들어간 큰 아들 진구는 미국문화원점거농성사건의 주동자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콩밥을 먹는다. 고향에 내려와 농촌공동체 운동을 벌이다 실패하고, 농민회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하나있는 딸 선희는 중증우울증에 걸려 친정살이를 하고, 막내 진표는 증권회사 직원으로 고객의 돈을 잘못 투자해 집안을 다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필재는 도로가 자투리땅에서 콩을 터는 연출로 중국산 콩을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야바위 장사꾼으로 타락했다.

당구장, 레스토랑, 스탠드 바, 룸살롱, 노래방, 단란주점 등. 땅 투기와 부동산 개발로 돈맛을 알아버린 시골 사람들의 난잡한 욕망과 아귀다툼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 소설을 읽는 나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TV 농촌드라마에서 보여주듯 공동체 정서가 살아있는 시골은 이제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농촌은 이제 더 이상 농촌이 아니다. 타락하고 음흉한 도시의 뒷꽁무니를 부지런히 쫒아가고 있을 뿐이다. 벼베기 철이 돌아오면 어디선가 젊은 아가씨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계절 뜨내기 술집 여자들이다. 일손 없는 촌부들은 술타령으로 농한기 추운 세월을 흘려보냈다. 설날이 다가오면 싸구려 화장내를 풍기던 그녀들도 사라졌다. 몹쓸 풍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내가 아는 수만평씩 논농사를 짓는 땅부자들이 많은 어느 섬의 실제 이야기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물바구니  (0) 2014.06.02
호랑이 발자국  (0) 2014.05.30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일본편 1 그리고 3  (0) 2014.05.26
무농약 유기 벼농사  (0) 2014.05.22
自給을 다시 생각한다  (0) 2014.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