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창비
“일본편 3 교토는 샀어. 그런데 ‘금각사·은각사 그리고 광륭사’는 없는데”
“에이, 그게 그거에요. 그리고 ‘소로우의 강’도 안내원을 찾아서 물어 보세요.”
손전화를 통한 작은 형과의 통화다. 퇴근을 앞당겨 병문안을 오면서 형은 인천 대형서점에 들렀다. 전날 나는 책 구입을 부탁했다. 책과는 거리가 먼 형은 서점 도우미에게 물어 어렵게 책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어둠의 장막이 위성도시 고층빌딩 병원을 삼키고 ,형은 손에 두 권의 책을 들고 병실을 들어섰다. 14. 05. 12 구입한 날짜가 책술에 붉게 찍혀 있었다. 내가 수술을 받은 날이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나는 책 뒷날개부터 살폈다.
1권 규슈 - 빛은 한반도로부터
2권 아스카·나라 - 아스카 들판에 백제꽃이 피었습니다.
3권 교토의 역사 -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4권 교토의 명소 - 일본미의 해답(근간)
아하! 그렇구나. 우리의 천년고도 경주에 해당하는 일본 교토의 방대한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기가 두 권으로 출간되는 구나. 작년 7월 말. 막 출간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2권을 나는 서둘러 손에 넣었다. 일본편 1 규슈의 초판본 뒷날개의 출간 안내는 이렇다.
3권 교토 - 금각사·은각사 그리고 광륭사(근간)
부처님 오신 날 5월 6일 나는 일을 당했다. 아침 8시경. 휴일이라 조반을 먹는데 늑장을 부렸다. 산 너머 큰말의 마지막 못자리를 앉히는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한 달 전 구입해 나의 손을 떠나지 않던 자전거를 타고 산너머 들판으로 향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손을 도와 못자리 앉히는 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일꾼들과 인사를 나누고 늦은 아침을 먹으려 집으로 향했다. 노인네들 말로 수가 사나웠나 보다. 하루 두세 번 오가던 주문도저수지 고갯길에서 나는 자전거와 곤두박질쳤다. 안경이 박살나 침침해진 눈앞으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한적한 섬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마저 없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기를 쓰며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트럭을 타고 보건진료소로 가 급한 대로 상처 부위를 세척했다. 응급환자로 급히 행정선을 타야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집으로 향했고 입원 준비를 했다. 놀라신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예비 안경과 신용카드와 구두 그리고 읽을거리로 책장에서 ‘일본편 1 규슈’를 빼들고 배에 올랐다. 주문도 앞바다를 행정선이 쾌속으로 갈랐다. 40여분. 강화도 외포리 포구. 119로 강화병원. 응급실에서 CT 촬영 후 앰뷸런스로 일산 백병원으로 후송 입원했다. 3주 진단. 변연절제술과 피부이식술.
일산 백병원 입원실에서 성균관대 불문과 학생이었던 김귀정 열사를 생각했다. 1991년 5월 25일. 최전방에서 시위대를 진압하고 체포하는 악명 높던 백골단의 폭력진압에 스러져간 단아한 여학생을. 백골단은 시위대에게 SY-44탄과 사과탄을 전쟁을 벌이듯 무차별 난사했다. 노태우 정권은 열사의 시신마저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서울 백병원 영안실의 시신을 탈취하려 도발을 감행했다. 그때 나는 안산공단 노동자로 열사를 지키기 위해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 시절 5월 투쟁은 고인이 된 소설가 김소진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 잘 묘사되었다. 찬바람이 부는 11월.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발걸음을 해야겠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전태일 묘를 둘러보고 나는 열사의 묘 앞에 설 것이다. 5월 23일. 18일 만에 병원문을 나서는 나의 손에 세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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