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호랑이 발자국
지은이 : 손택수
펴낸곳 : 창비
이 시집을 손에 넣은 지 벌써 두해가 흘렀다. 나의 책읽기는 그동안 시와 거리가 멀었다. 강화도를 나가면서 지루한 배시간을 죽이려고 부피도 가볍고 글줄도 짧은 시집을 손에 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낯설던 시가 객실에 등을 대고 누워 한 수 한 수 잡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다. 어느새 책장에 백오십여권의 시집이 어깨를 겨누었다. 그때 한꺼번에 손에 넣은 십여권의 시집 중 가장 늦게 펼친 시집이다. 이 시집은 진보문예지 ‘실천문학’의 대표이사 손택수의 첫 시집이다. 시인은 70년생이다. 40대 초반 대표이사의 포부가 당차다. “변방의 정신으로 돌아가 리얼리즘을 되살리고 젊은 세대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겠습니다.”
실천문학의 펴낸이인 시인은 변방 출신이다.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취학하면서 부산으로 이사했다. 청소년기를 안마시술소 보이, 구두딱이 등 밑바닥 생활로 보내다 25살 늦깍이로 경남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다.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목련 전차’(창비, 2006년),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 2010년).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 피할 생각도 없이 주저앉아 울던 / 어머니가 그랬다 / 병든 사내를 버리지 못하고 / 버드나무처럼 쥐여뜯긴 / 머리를 풀어헤치고 흐느끼던 울음에도 / 저런 청승맞은 가락이 실려 있었다.(소가죽북 / 2연, 28쪽)
노름꾼 아버지의 발길질에 주저앉은 어머니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에 어린 새끼들이 비쳤을 것이다. 시집에는 가족사를 다룬 시가 곧잘 등장했다. ‘소가죽북’에서 노름꾼으로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는 술담배에 찌든 속을 옻닭으로 보신하며(옻닭), 시원찮은 아들의 통지표에 남모르게 도장을 찍어주고(지장), 어린 아들의 부스럼딱지를 고치려 공동묘지에서 뼈를 주워오고(송장뼈 이야기), 흑백사진 속 스무살 아버지는 느티나무 둥치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이버지와 느티나무)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더 철이 들어서는 /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아버지의 등을 밀며 / 부분 , 30 ~ 31쪽)
이 땅의 수많은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두려운 존재로 불화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삶에 각인된 수많은 기억들은 아버지의 낙인으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원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쓰러져서야 못난 아들들은 간신히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새로운 세대의 민중적 서사성을 구현한 시인으로 동갑내기 손택수와 문태준을 꼽는다. 나의 시정은 불우 쪽으로 평형추가 약간 기울어졌다. 두 시인은 어린 시절 가난의 추억을 공유하지만, 손택수의 시에 드러난 눈물에 어룽진 가족사의 비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 s 묵은 리뷰를 올렸다. 두달 전 실천문학사 대표이사로 소설가 김남일이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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