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집은 아직 따뜻하다
지은이 : 이상국
펴낸곳 : 창비
미천골, 저항령, 진전사지, 미시령, 울산바위, 남대천, 낙산사 홍련암, 삼불사, 화진포, 영랑호, 화암사, 선림원지, 내원암, 물치 바다, 삼포리, 송지호, 건봉사, 청호동 등.
시편에 등장하는 지명과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이다. 시인은 양양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향을 시의 주 무대로 삼았다. 양양하면 우리는 설악산과 동해를 즉흥적으로 떠올리지만 시인은 전형적인 농투산이의 아들이었다. 그동안 시인은 피폐해진 농촌현실을 고발하고, 자연과의 합일을 도모하는 생태 의식을 심화 시켰다. 시인은 산업화·도시화로 인한 황폐·궁핍· 해체되어 가는 농촌과 고단한 농민들의 삶을 형상화했다. 시편마다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는 자들의 슬픔과 분노가 가슴 아프게 그려졌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4부에 나뉘어 모두 58 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임규찬의 ‘소처럼 선림(禪林)에 누웠구나’다. 이 시집은 시인에게 제1회 백석문학상과 제9회 민족예술상을 안겨 주었다.
표지그림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판화가 홍선웅의 작품이다. 고목의 둥치에 들어앉은 한 채의 집이 편안했다. 나는 유화보다 판화가 더 마음에 다가왔다. 80년대 대학시절 걸개그림이 눈에 익었기 때문일지 몰랐다. 그 시절 사회과학 서적의 표지그림은 대개 오윤의 판화였다. 그리고 나는 새해 연례행사로 이철수의 판화달력을 벽에 모셨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다. 앞날개의 시인 사진 배경이 눈에 익었다. ‘겨울 화진포’(84 ~ 85쪽)의 ‘김일성 별장’을 오르는 계단 돌담으로 보였다.
시인은 머리가 아파 CT 촬영을 한다. 소량의 방사능 피폭에 노출된 것이다. 이 땅의 병원들은 방사능 피폭을 남용했다. 가는 병원마다 같은 부위를 또 CT 촬영했다. 이십 여일 병실에 갇혀있다 나왔다. 남보다 병원 생활이 잦았던 나의 삶은 '낙타를 찾아서'(22 ~ 23쪽)에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다시 동쪽으로 천리를 더 가면 호야산이라는 곳인데 초목이 자라지 않고 모래와 돌이 많다.*
낙타는 어디 있는지,
두통 때문에 엑스레이 단층촬영하던 날 / 칠성판 같은 침대에 누워 / 덜컥, 덜컥 하고 필름이 넘어갈 때마다 / 나는 내 마음의 모습이 궁금했다
남쪽에서 혹은 북쪽에서 / 전후 좌우에서 바라본 / 나의 해골산은 비어 있었다 / 거기에는 초목이 없었고 / 노래방도 없이 적막할 뿐 / 다만 등고선처럼 희미한 길들과 / 정신의 집이 있었던지 / 푸르스름함 자국이 보였다
깨끗하군요 하며 / 연신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새파란 의사에게 / 내 영혼은 어디 있는지, / 여기서 한 십리 서쪽으로 더 가면 무엇이 보이는지 /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돌과 모래로 아름다운 사막 한가운데로 / 어디론가 가고 있는 사람 같은 게 보였다
낙타야 낙타야
*「산해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