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푸른 매화를 보러 가다
지은이 : 김하돈
펴낸곳 : 들녘
시인 김하돈은 시집이 없다. 아니 저자에 대한 나의 과문인지도 모르겠다. 시집을 내었으나 품절이나 절판이 되어 나의 아둔한 신경망을 빠져 나갔는지도 모른다. 주말에 책씻이를 하고 저자의 프로필을 뒤적이고, 구글에 들어가 웹문서를 검색해도 지은이의 시집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런데 김하돈이라는 이름 앞에는 항상 시인이라는 접두사가 붙어있다. 확실하다. 저자는 시로 문단에 등단했다. 하지만 아직 첫 시집을 내지 못한 것이다. 무슨 사연이 숨어 있을까. 나는 시인의 책을 두 권 째 잡았다. 거의 10년 전인 99년 2월 실천문학사에서 간행한 기행산문집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를 잡고, 뒤늦게 두 번째 산문집을 펼친 것이다. '작가의 말' 첫 문장은 이렇다. '천등산 북쪽으로 숨어든 지 두 해가 지났습니다.' 첫 쪽을 넘기니, 이 책은 2001년 12월애 초판이 발행되었다. 그렇다면 시인은 첫 산문집을 내고, 곧바로 천등산 박달재 아래에 터를 잡은 것이다. 아쉽게도 책을 찾는 이가 없는 지 6년이 지났지만, 판수는 초판 그대로다. 팔리지도 않는 책이 여적 절판되지 않고 나의 손에 들어 온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두 권의 책 모두 길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는 이 땅의 등줄기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열다섯 고개에 대한 기행산문이다. 이에 반해 '푸른 매화를 보러 가다'는 길에 대한 감흥이 훨씬 사색적으로 깊어졌다. 그럼 부석사를 찾아가는 시인의 발길이 그려진 두 책의 문장을 비교해보자. '절도 절이거니와 산천 또한 유별하여 기운이 비범하여 허튼 걸음으로 가 닿아도 언뜻 대화엄의 그림자를 밟고 돌아오는 가람'. '아, 나는 언제나 여기까지만 왔다가 돌아섭니다. 나의 부석사 가는 길은 늘 여기까지입니다. 그렇게 오래오래 나는 부석사로 갑니다.'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이 땅 구석구석을 밟는 시인이 길 위에서 쓴 편지글이고, 둘째는 천등산 박달재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글 쓰는 저자의 길에 대한 상념을 드러낸 '산골편지' 그리고 마지막은 기행문으로 '지리산종주기'와 '베트남여행기'가 실려 있다. '베트남여행기'에는 '사이공환타지' 연작시 2편이 실려 있다. 그렇다. 기다리다 보면 시인의 시집을 손에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깜냥으로 시집을 못 낸 사연을 유추하면 현실의 무참함이 시인의 시업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데 있을 것이다. 시인은 현재 백두대간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책상머리에 앉아 시상을 떠올리기 보다, 군데군데 혈맥이 끊어진 백두대간의 신음을 현장에서 가슴 저미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길이란 다만 시간과 속도 이상의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울림이 큰 시인의 요즘 길에 대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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