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

대빈창 2008. 5. 25. 15:52

 

 

책이름 :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

지은이 : 김경애

펴낸곳 : 수류산방

 

상전벽해(桑田碧海) - 뽕나무 밭이 바다로 바뀐 것처럼 엄청난 변화를 이르는 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그렇다면 우리 국토는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목·건설 공화국답게 자연이라는 어머니 품을 시멘트·아스팔트화로 뒤덮는 즉 개발지상주의자에게는 성장과 발전이고, 환경론자에게는 파괴라고 일컬어지는 변화였다고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그 흐름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 책을 잡은 지가 벌써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곳만은 지키자'는 한겨레신문사에서 '96년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92년 한겨레신문은 기획 연재물로 '이 곳만은 지키자 - 자연 생태계 긴급 보전 호소'를 1년6개월동안 실었다. 조흥섭, 김경애 두 기자가 전국 56곳을 직접 발로 답사하며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할 이 땅의 자연 생태계 리스트를 작성한 것이다. 반면 이 책은 김경애 기자가 2003년도에 12년 전 답사했던 지역 가운데 35곳을 다시찾은 내용을 단행본에 담아 제법 책술이 두텁다. 90년대 환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신선한 문제제기로 '환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 곳만의 지키자'의 영향은 컸다. 항상 뒷북치는 일가견이 있는 정부당국은 답사지역 55곳을 자연 생태계 모니터링 지역으로 선정하게끔 했고, 그중 7곳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선정됐다. 이 책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쯤 뒤, 우리가 지키자고 다짐했던 자연 생태계가 얼마나 무사한 지, 어떻게 변했는지, 왜 파괴됐는지, 되살릴 수는 없는지 다시 점검하고 확인하겠다'는 한겨레가 약속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말해서 무엇하랴. 일년 내내 온 나라가 토목공사 중인 이 땅에서 그래도 지킬만한 자연 생태계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낄 뿐이다. 말로만 '멸종 위기 보호 식물'이니, '자연 생태 보호 지역'이니 '천연 기념물 서식지'라고 떠들 뿐이지, 뒷문으로 개발과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레미콘이 들락거리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지 않은가.

내가 살고있는 강화도도 예외일 수는 없다. 강화도 남단 갯벌에는 지금 붉은 꽃이 융단처럼 덮혀가고 있다. 얼빠진 자들은 그 자태에 넋을 잃고 아름다움(?)을 감탄하지만, 이 현상은 갯벌이 사라지는 전조다. 그것은 꽃이 아닌 해홍나물로 갯벌의 황무지화를 예고한다. 인천공항과 영종대교가 완공되면서 물 흐름이 바뀌자, 서해안 마지막 해양생태 보고인 강화도 남단 갯벌이 점점 딱딱해져가고 있다. 이 사실은 시인 친구인 함민복이 증언했다. 동막해수욕장 앞 갯벌에서 조개를 찾기 어렵다고. 더 웃기는 일은 갯벌체험 인원을 끌어 들이려 양식조개를 뿌려 놓는다고. 눈 가리고 야옹하는  이런 꼴불견이 언제까지 통할까. 참! 서글픈 현실이다. 나는 정수사 주변의 붉노랑상사화 군락지가 걱정이다. 얼마 전 주말에 찾은 정수사는 중창불사로 공사판이 되었다. 지금은 하늘로 밀어올린 부챗살 같은 잎들이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을 때다. 그리고 잎들이 모두 땅바닥에 뉘어져 자취를 감추고 나면 불현듯 땅위를 뚫고 꽃대가 솟구칠 것이다. 그러기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상사화(相思花)라는 슬픈 이름을 얻었다. 상생과 보존보다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탐욕에 일그러진 인간 군상들로 인해 붉노랑상사화는 아마! '그냥 좀 내버려둬라!'는 염원으로 상사병을 앓고 있지는 않은지.

이 땅의 자연생태 관광산업은 왜 굳이 리조트를 건설해야만 하는가. 골프장을 짖고, 유흥위락단지를 조성하고, 어린이 물놀이 시설을 만들고,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다. 인위적인 조명과 소음으로 '관광자원'들이 이 땅을 등지는데 건물간 멋들어지게 지으면 할일을 다한 것인가. 생태관광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그 주인공을 떠나게 만드는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일례로 뉴질랜드는 전 해역에서 바다낚시를 금지했다. 지역 주민들은 소득자원이 사라졌다고 데모를 했지만, 전세계 다이버들이 때묻지 않은 바닷속 풍경을 보러 그름처럼 몰려들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것이 진정 상생적인 생태관광이 아닐까. 희귀한 서귀포 앞바다 영산호 군락을, 굳이 방파제를 건설하면서까지 파괴할 수밖에 없는가. 이 땅의 자연생태 보존에 대한 현실을, 표지를 감싼 띠지의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딘가 많이 낮이 익지 않은가. 태안 유조선 기름유츨 사고로 기름범벅이 된 바닷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애쓰는 모습이다. 바로 이 사진이 대한민국의 생태인식을 단적으로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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