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지은이 : 손호철
펴낸곳 : 이매진
손호철. 꽤나 낯이 익은 이름이다. 90년대 후반 창비에서 발간한 두터운 책술의 '현대민주주의론' 두 권이 아직 내 책장에는 꽂혀있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전 세계는 자본주의의 전일적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승리의 축배는 바로 불가사리처럼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려 빨판을 내뻗는 자본의 촉수로 나타났다. 대안과 전망을 상실하여 망연자실한 진보 진영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나마 갈 길을 모색해야 했다. 바로 '현대민주주의론'으로 그동안 한국사회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일궈낸 실천적 성과물의 이론화라고 할 수 있다. 진보운동이란 현실에서 탄력을 받을 때 소소한 전술적 차이는 동력에 의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망 부재의 상황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백가쟁명식의 논쟁이 인다. 이 땅의 진보학자들이 총망라되어 당대 상황을 점검하고, 나아갈 방향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 중심에 진보적 정치학자 손호철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신문칼럼에서나마 지은이의 요즘 사유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21C들어 이 땅에도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전 국토의 병영화라는 열악한 동토에서 진보 세력이 원내에 진출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진보의 갈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는 진보적 정치학자 손호철의 라틴아메리카 횡단기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여는 여행기, 답사기처럼 그 지역의 풍광이나 문화에 대한 안내서 구실도 하지만, 돋보이는 것은 정치학자답게 남미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다. 21C를 여는 새해부터 5년간 '안데스 좌파벨트'라고 불리어지는 '좌파정부라는 유령이 배회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사회변혁을 지켜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러기에 나는 미국을 위시한 제1세계의 다국적기업이라는 덩치 큰 깡패가 전세계 민중에게 주먹다짐을 하는 신자유주의에 용감하게 맞서 멱살을 움켜쥐는 남미 좌파 정권의 성립 과정과 그 혁명 투쟁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표제는 유명한 시'마추픽추 정상에서'를 쓴 네루다의 '이제 나는 마추픽추 정상에서 아메리카 전체를 보았다'라는 문장을 변용한 것이다. 나는 '하얀 스카프'로 상징되는 아르헨티나의 '5월 어머니회'의 투쟁을 보면서 이 땅의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가졌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의 화려함에 자아도취된 우리의 몰골이지 않은가. 내일모레가 5·18 광주민중항쟁 28돌이다. 홍세화 말대로 민주화 투쟁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지, 기념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민주화운동 기념일'이라고 박힌 달력을 보면 소주가 생각난다. 증류한 원액에 물을 탄 것이 대중들의 술인 희석식 소주가 아니던가. 화려하게 단장된 망월동 묘역을 찾는 발길이 점점 뜸해지는 것이 나만의 일일까. 그래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자기 한 목숨 장렬하게 산화한 열사들을 떠 올리며 마음속으로나마 소주 한잔 올려야겠다. 화사한 봄기운에 취한 상춘객들의 자동차 행렬을 바라보는 무덤 속 주인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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