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플라테로와 나
지은이 : 후안 라몬 히메네스
옮긴이 : 박채연
펴낸곳 : 을유문화사
내가 ‘플라테로’를 처음 만난 것은 김영래의 장편소설 ‘숲의 왕’을 통해서였다. 소설에서 ‘숲의 형제단’은 강원도의 산중 '에피쿠로스의 정원' 생태계를 지키며 살아갔다. 소설의 말미는 정원을 지킨 기쁨의 잔치가 벌어지던 중 벼락이 거대한 굴참나무를 때려 산불이 ‘정원’을 휩쓸었다. 형제단이 하나둘 떠나고 임노인 혼자 돌아온 당나귀와 함께 정원의 부활을 일군다. 여기서 돌아온 당나귀가 ‘플라테로’다. 소설을 덮고 나는 히메네스의 산문시집 ‘플라테로와 나’를 손에 넣었다.
후안 라몬 히메네스(1881 ~ 1958)는 스페인 시인으로 195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20C 스페인 문학의 산문시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시집은 시인이 1906년 고향인 모게르로 귀향해, 변해버린 고향을 목격하고 옛 모게르의 기억을 떠올려 쓰게 되었다. 여기서 ‘플라테로’는 은빛이 나는 나귀들의 일반적이 이름이다. 시인이 밝혔듯이 ‘플라테로’는 한 마리 나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플라테로라고 불리는 나귀들 전체에 대한 이야기로 시인에게 젊은 수컷 나귀들이 있었다. 시인은 플라테로를 이렇게 아꼈다. '플라테로는 나와 똑같고 다른 당나귀들과 다르다. 내 생각에 우리는 꿈도 함께 꾸는 것 같다.' (93쪽) 「플라테로와 나」는 한 해의 자연주기에 따라 봄에 이야기가 시작되어, 플라테로가 죽은 또다른 봄으로 마무리된다. 시집은 모두 136편에, 후에 추가한 두 편 모두 138편으로 이루어졌다. 시집의 각주가 특이하다. 일련번호를 붙이지 않고, 본문의 쪽수를 따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새롭기는 하나 독자로서 연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시편마다 1 ~ 2개 뿐인 각주를 여백 많은 본문 뒤에 붙였으면 읽어 나가기에 편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자이기보다는 전환기에 희망을 갖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을 돕는 민중의 형제”(353쪽)이기를 원했던 시인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아이들에 대한 따듯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시편마다 보여주었다. 고향에 돌아 온 시인이 어린 시절 아름다웠던 고향 산천이 황폐하게 변한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장면이 ‘강’(184 ~ 185쪽)에 잘 드러났다. - (······) 리오 틴토 광산의 구리가 모든 걸 망쳐 놓았어. 플라테로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은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은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잇고 있단다. 그러나 삼각돛배, 지중해 범선들, 쌍돛대를 단 범선들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어. -
‘일요일마다 내가 그 등에 올라타 마을 어귀 길을 갈 때면 단정하게 옷을 입은 농부들이 느릿느릿 걸음을 멈추며 플라테로를 본다.’(17쪽) 좇 때고 귀때기 때면 남는 게 없다는 당나귀를 내가 실물로 본 것은 3 ~ 4년 전 볼음도에서였다. 초로의 부부가 섬으로 귀농하면서 두 마리의 당나귀를 데려왔다. 새끼를 밴 암놈과 다 자란 수놈이었다. 그후 암놈은 새끼를 낳아 당나귀 식구는 세 마리로 불었다. 폭염이 퍼붓는 그해 여름 한낮, 나는 새로 깐 아스팔트 선창 길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 산모퉁이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두 마리의 당나귀였다. 규칙적인 울림은 편자가 포도에 부딪는 소리였다. 모자(母子)가 당나귀 등에 각자 올라탔는데, 당나귀의 눈에 사격선수처럼 눈가리개가 씌어졌다. 당나귀는 앞만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당나귀 눈에 가리개는 왜 씌운 거예요.”
“당나귀는 산만해서 가리개를 안 하면 아무데나 막 들어가요.”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0) | 2014.11.06 |
---|---|
고추잠자리 (0) | 2014.10.30 |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0) | 2014.10.24 |
어머니전 (0) | 2014.10.22 |
가난한 사랑노래 (0) | 2014.10.20 |